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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S11', 소소한 못생김엔 이유가 있다

조회수 2017. 9. 29. 18: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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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디자인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iOS와는 거리가 먼 시다. 애플의 iOS는 그냥 봐도 예쁘다. 자율성을 제약하는 대신 통일성 있고 미니멀한 UX·UI 디자인으로 사랑받아 왔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예쁨을 완성시키는 ‘꽃’과 같은 존재였다. iOS는 예뻤다. 하지만 지난 9월20일(한국기준) 업데이트된 ‘iOS11’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오래 보아야 했고, 자세히 보아야 했다.

크고 굵다. iOS11의 첫인상이다. 높으신 분들이 좋아할 것 같은 커다란 볼드체가 iOS를 헤집어 놓았다. 키패드를 비롯해 메시지, 메일, 메모, 설정, 앱스토어 등 기본앱의 상단 헤드라인은 눈에 한가득 들어올 정도로 큼지막해졌다. 문득 지난해 ‘iOS10’이 처음 나왔을 때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아이폰6S’를 쓰고 있던 나는 업데이트 알림에 굴하지 않고 ‘iOS9’에서 꽤 오래 버텼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기본 음악앱이 못생겨졌기 때문이다. 크고 굵어진 낯선 UI가 라섹을 통해 한껏 예민해진 내 안구를 한동안 괴롭혔다.

iOS10 키패드
iOS11 키패드

이번에 소소하게 달라진 UX·UI 디자인은 iOS10의 음악앱에서 시작됐다. 음악앱의 작은 날갯짓이 iOS의 소소한 못생김을 완성시켰다. 돌이켜보면 iOS의 현재 모습은 ‘iOS7’ 때 완성됐다. 그뒤로 겉보기에는 큰 변화 없이 기능성이 더해져 왔다. 그리고 글씨 굵기도 점점 커졌다. iOS7에 적용된 글꼴은 전반적으로 날카롭고 날렵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병약해보일 정도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가을마다 출시되는 iOS 글꼴은 말처럼 살을 찌워왔다.

'iOS7' 화면

물론 애플이 동양의 사자성어를 고려해서 디자인을 적용해오진 않았을 것이다. iOS가 소소하게 변한 이유는 높으신 분들이 크고 굵은 글꼴을 좋아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바로 시인성이다. 누군가에겐 세련된 디자인이 누군가에겐 곤욕이 될 수 있다. 작고 얇은 글꼴은 미학적으로 아름다워 보일지 모르지만 시각적 인지를 방해한다. 라섹을 한 내 눈은 볼드체를 세련되지 않다고 받아들이지만, 노화 또는 장애로 인해 시각적 능력이 감퇴된 사람에게 이번 변화는 기기의 사용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멀찍이서 보면 확실히 iOS11이 가독성이 좋다. (왼쪽부터 iOS11, iOS10)

애플은 ‘세계개발자회의(WWDC) 2017’에서 ‘모두를 위한 디자인’에 대한 세션을 진행했다. 발표에 나선 애플 휴먼 인터페이스팀 디자이너 캐롤라인 크랜필은 “애플 제품은 반드시 모두에게 이해되고 인지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라며 낮은 시력을 가진 사람에게 볼드체가 줄 수 있는 이점에 대해 말했다. 애플 운영체제는 다른 어느 기업보다 장애인을 배려해왔다. iOS는 ‘손쉬운 사용’이란 이름으로 장애인 접근성 기능을 제공하고 개선해왔다.

애플은 이번 OS 판올림에 “가독성의 극대화(maximizing legibility)”를 추구했다. 접근성 및 포괄성을 위한 설계가 사회적 이익을 창출하고, 참여를 확대하며, 모든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생각에서다. 혹자는 '손쉬운 사용' 설정을 통해 글자 크기와 굵기 조절 기능을 넣어주면 되지 않냐고 되묻지만 설정에 들어까지의 과정 자체가 접근성을 낮춘다. 알아서 찾아가게 만드는 것과 기본 UI에서부터 포괄성을 고려하는 건 큰 차이가 있다. iOS11의 크고 굵은 낯섦은 모두가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쓸 수 있도록 하는 배려다.

함께 사는 사회

미학적 아름다움과 사용성은 산업디자인에서 정반합을 이룬다. 이번 업데이트는 사용성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진 모양새다. 음악이 재생될 때 잠금화면이 찌질하게 변한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iOS11 이전에는 음악을 듣고 있을 때 기본 앱이든 서드파티 앱이든 음악앱 UI가 풀커버로 큼지막하게 펼쳐졌다. 하지만 iOS11에부터는 화면의 3분의 1 크기로 줄어들었다. 한마디로 못 생겨졌다. 아이유 앨범아트가 예쁘게 나와도 소용없다. 하지만 알림을 확인하기엔 더 편해졌다. 한 화면에서 시간, 음악앱 UI, 갖가지 알림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제어 센터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많은 외신과 사용자들이 바뀐 제어 센터 디자인을 기괴하다고 평가했지만 사용성 측면에서는 한 화면에서 좀 더 많은 조작을 할 수 있게 됐다. 더 이상 다른 음악을 들으려고 화면을 옆으로 밀지 않아도 되고 제어 센터에서 저전력 모드, 음성녹음, 메모 기능을 바로 불러올 수도 있다. 많은 아이폰 사용자들이 고대하던 화면 녹화 기능도 추가됐다.

사실 사용성의 변화는 아이폰보다 아이패드에서 훨씬 크게 나타난다. 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살펴보도록 하자.

소소한 못생김에는 이유가 있다. 낯선 변화의 중심에 애플의 배려가 담겨있다. 애플은 일부에게만 예뻐보이는 디자인을 버리고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택했다. iOS 디자인이 앞으로도 계속 굵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미학과 사용성, 둘 사이의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모든 사람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iOS11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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