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STX조선해양의 '떠돌이 삶'..이번엔 끝날까

조회수 2020. 10. 22. 21: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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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조선업은 제조업 중에서 특이점이 매우 많은 산업입니다. 대형 선박 한척의 가격은 수천억원에 달하는데요. 영국 조선해운 시황분석 기관인 클락슨리포트에 따르면 지난달 LNG선 한척의 가격은 1억8600만 달러(2106억원)입니다. 

강남 아파트 100채를 살 수 있는 금액인데요.


조선사는 연간 수십여척의 선박을 건조해 수익을 냅니다. 선사로부터 선박을 수주해, 설계부터 인도까지 1년이 넘게 걸립니다. 조선업은 침체기와 호조기의 변동성이 여타 산업보다 큽니다. 불황은 수년에 걸쳐 장기간 진행됩니다. 조선업종에는 10년마다 호황과 불황이 반복돼 ’10년 주기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은 국내 조선업이 초호황이었던 시기였습니다.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 성장으로 전 세계의 상품과 에너지들이 중국에 몰리던 시기였죠. 당시 국내 조선사에는 선사들의 수주 요청이 잇따랐고, 선박을 빨리 인도받기 위해 웃돈을 주는 사례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소는 물론 선박 블록 등 기자재를 납품하는 중소 업체들도 이 시기는 호황이었습니다.


중소조선사인 성동조선해양(옛 성동기공)은 블록 업체로 출발했는데 조선업 호황기였던 2004년 중소조선소로 탈바꿈했습니다. 자동차를 빗대어 설명하면 자동차 엔진을 만들던 부품사가 소형차를 만들겠다고 한 셈이죠. 2010년부터 조선업에 불황이 찾아왔고 조선사와 기자재업체의 ‘보릿고개’가 시작됐습니다.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을 비롯해 다수의 중소조선사는 극심한 경영난을 맞았고, 기자재업체들은 대부분 도산했습니다. 이렇듯 조선업의 긴 불황은 조선산업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시장을 재편하기도 합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 등)과 삼성중공업 등 대형 조선사들은 긴 불황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중소 조선소들은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대형 조선소들은 중국 및 일본과 비교해 LNG 등 고부가가치 선종 부문에서 경쟁력이 상당합니다. 반면 중소 조선소들은 중국의 추격에 밀려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 한진중공업 등 중소 조선소들은 수주 물량이 급감하면서 경영이 어려워졌습니다. 경영권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넘어갔죠.


최근 중소 조선소는 ‘새 주인’을 찾아가는 분위기입니다. 성동조선해양은 올해 1월 HSG중공업과 큐리어스파트너스에 인수됐습니다. 이후 사명을 HSG성동조선으로 바꾸고 선박 대신 블록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달 한진중공업 인수절차가 시작됐죠. KDBI인베스트먼트가 한진중공업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선조선과 STX조선해양의 매각도 추진 중입니다. 대선조선은 부산지역 향토기업인 동일철강이, STX조선해양은 KHI인베스트먼스(이하 KHI)와 유암코(연합자산관리)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중 STX조선해양의 매각에 시장의 관심이 쏠려있습니다. STX조선해양은 중형 조선소이지만 LNG선을 건조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력이 좋은 조선사입니다. STX그룹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 경영이 부실해졌고, 그룹 핵심이던 STX조선해양의 경영권은 산업은행으로 넘어갔죠. 이후 현재까지 산업은행의 소유(보유지분 35.2%)입니다. 이번 인수가 성사되면 7년 만에 산업은행의 관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유암코·KHI가 STX조선해양 인수에 관심을 나타내는 이유는 LNG선 때문입니다. 국내 조선소 중 LNG 운반선을 건조할 수 있는 곳은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 및 현대미포조선)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진중공업 △STX조선해양 등 다섯곳입니다.


LNG 운반선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됩니다. LNG 저장탱크가 선체와 분리된 모스식과 선체 내부에 탱크를 탑재한 멤브레인 방식이 있습니다. 멤브레인 방식은 LNG의 품질 관리가 용이하고, 선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대형화가 용이한 게 장점입니다. LNG 운반선은 천연가스를 액체 상태로 운반하기 위해 섭씨 영하 162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합니다. 전세계에서 발주된 LNG선은 국내 조선사들이 사실상 싹쓸이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기준 글로벌 LNG선 선복량은 582척으로 한국이 373척(64%), 일본과 중국이 각각 23%, 7%입니다. 선사별로는 대우조선해양이 145척을 건조해 가장 많았고,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124척과 92척을 건조했습니다. STX조선해양은 7척을 건조해 인도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청정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LNG(액화천연가스) 수요는 급증할 전망입니다. LNG의 주성분은 메탄(CH4)으로 석탄 등과 비교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습니다. 1킬로와트 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석탄이 991g, LNG가 549g입니다. LNG선 수출입량은 2017년 3900억㎥으로 집계됐는데요, 2040년에는 8710억㎥로 2.23배 증가할 예정입니다. 같은 기간 천연가스 소비량은 3조6700억㎥에서 5조3700억㎥으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LNG는 미국과 러시아 등에서 생산하는데, LNG를 필요로 하는 곳에 운송하려면 운반선의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거죠. LNG선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사의 ‘몸값’이 높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유암코·KHI가 STX조선해양의 사업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는 MR탱커도 있습니다. MR탱커는 5만 DWT(재화중량톤수) 규모의 석유화학제품을 운반하는 선박입니다. STX조선해양의 주력 선종은 MR탱커입니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운항 중인 MR탱커의 상당수는 조만간 교체시기가 다가옵니다. MR탱커는 2000년 전후로 집중적으로 건조돼 폐선시점인 20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중소조선사들은 2017년 전후로 수주 물량이 끊겼는데, STX조선해양은 MR탱크 등 주력 선종에서 꾸준히 수주 실적을 쌓고 있습니다. 현재 수주잔량은 1억740만 달러(1216억원)입니다. 수주 잔량은 2015년(23억4500만 달러)의 20분의 1 수준이지만 꾸준히 수주 실적을 쌓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STX조선해양은 올해 선사들과 3건의 선박건조의향서(LOI)를 체결했습니다. 앞으로 4건을 추가로 체결할 계획인데요. 앞서 STX조선해양이 LOI를 체결한 선사들과 대부분 수주 계약을 체결한 만큼 수주 잔고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STX조선해양은 중소 조선소의 불황기에도 70%대의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STX조선해양의 난관은 유동성이었습니다. STX조선해양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활발하게 영업을 펼쳤지만 유동성 문제로 난관에 부딪혔었죠.


선박은 인도 시점까지 장기간이 걸리죠. 조선사들은 선박을 수주할 때 계약금액의 20%를 선수금으로 먼저 받고, 선박 인도 후 나머지를 받는 게 일반적입니다. 선박 건조에 필요한 비용도 조선사들이 먼저 부담합니다. 조선사의 유동성은 선박 인도 시기 높아집니다.


대형 조선소의 경우 유동성이 풍부해 문제가 없지만, 중소 조선소의 유동성은 수주에 장벽이 되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선수금환급보증(RG)이라는 안전장치가 있습니다. RG는 외국 선사가 조선사에 준 선수금에 대해 국내 은행이 지급을 보증해주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조선사가 파산할 경우 국내 은행이 선수금을 대신 내주는거죠.


STX조선해양은 유동성이 부족해 금융권에 자금 지원과 RG 발급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RG를 받지 못할 경우 수주를 따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상반기 기준 대우조선해양의 선수금 보증한도는 80억 달러입니다. STX조선해양은 1억 달러 수준입니다. 회사의 규모를 고려해도 중소 조선소와 대형 조선소의 RG 보증한도 차이는 상당해보입니다.

출처: 국내 조선소 선수금 지급보증 현황./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업계에서는 STX조선해양이 금융권의 지원이 활성화될 경우 빠르게 수주를 확대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STX조선해양의 주력 선종인 MR탱커와 LNG선은 여타 선종에 비해 시황 개선 속도가 빠른 선종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업은 수주 물량이 실적을 좌우합니다. 시황이 개선될 시기 본격적으로 수주하면 2~3년은 일감 걱정없이 영업활동을 펼칠 수 있죠.


유암코가 STX조선해양에 눈독을 들인 것도 현재 조선시황을 봤을 때 인수 가치가 충분히 있어 보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업계에서는 STX조선해양의 인수전은 매각가격이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매각가에 대한 이견이 커 이를 좁히는 게 관건”이라며 “향후 조선시황을 봤을 때 STX조선해양의 인수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STX조선해양의 올해 상반기 누적 매출액은 1950억원, 영업이익은 133억원입니다.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29억원 늘었고, 영업이익은 113억원 감소했습니다. 2조원이 넘는 매출을 냈던 2015년과 비교해 매출 규모는 크게 줄었습니다. 중소 조선소가 어려운 상황에도 흑자를 내고 있고, 경영 정상화를 향해 달려가는 점이 ‘포인트’입니다.

이보다 중요한 건 STX조선해양의 지속 가능성입니다. 인수 후 RG 발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STX조선해양의 일감은 천천히 말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STX조선해양의 ‘생명줄’을 쥔 건 산업은행입니다.


STX조선해양은 한보그룹의 위기로 STX그룹으로 넘어갔습니다. STX그룹이 와해되면서 현재는 산업은행의 소유입니다. STX조선해양이 험난한 여정 끝에 새 주인을 맞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By 리포터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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