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배당 위해 현금 '영끌'해야 하는 LG화학

조회수 2020. 10. 24. 10: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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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최근 국내 주식 시장에서 ‘핫’한 회사들 중 하나는 바로 LG화학이죠. 전기차 배터리 사업 강화를 위해 배터리 부문 분사 계획을 밝히자 시장이 크게 요동쳤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진 않았습니다. 지금은 다소 회복한 모습이지만 분사가 발표된 지 이틀 만에 주가가 12%나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주가 하락의 이유는 이미 여러 매체들을 통해 보도가 됐습니다. 배터리 부문을 100% 자회사로 소유하는 물적분할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죠. 이 경우 기존 LG화학 주주들은 배터리 부문 신설법인(LG에너지솔루션∙가칭)을 간접적으로 소유하게 됩니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 전망을 보고 투자한 주주들로서는 충분히 허탈감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인적분할을 하면 일반주주가 존속법인과 신설법인의 지분을 분할 전 기준으로 동일하게 보유합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 후 시장에서 고평가를 받을 경우 차익 실현을 노려볼 수도 있죠.


LG화학이 시장의 이런 반응을 미리 예상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개미(소액투자자)들을 과소평가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 반응에 놀란 것처럼 보이긴 했습니다. 분사를 발표한 9월 17일 컨퍼런스 콜을 개최해 부랴부랴 주주 달래기에 나섰습니다. 신설 배터리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70% 이상 유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주주들의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한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주주들이 가장 반길 만한 카드를 꺼냈죠. 바로 ‘배당 확대’입니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는 ‘연결재무제표 당기순이익 기준 배당성향 30% 이상 지향’이고, 또 다른 하나는 ‘향후 3년간(‘20~’22년) 보통주 1주당 최소 1만원 이상의 현금배당 추진’이었습니다.


LG화학 보통주 1주 가격은 어제(22일) 63만9000원을 기록했습니다. 주주 입장에서는 약 64만원을 투자해 1주를 1년간 보유하고 있으면 최소 1만원을 버는 셈입니다. 배당확대 정책이 발표된 다음날(15일) LG화학 주가가 전날 대비 1.43% 상승한 걸 감안하면 어느정도 효과는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LG화학 입장에선 이번 배당확대 발표가 얼마나 ‘통 큰’ 결정이었을까요. 한 번 과거 배당 규모들과 직접 비교해보겠습니다. 2010 사업연도부터 2019 사업연도까지 10년치를 모두 보도록 하죠.

우선 2010년대 중반까지 배당 정책에 커다란 변화는 없었습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개 사업연도 연속으로 보통주 1주당 4000원을 배당했습니다. 당시 발행주식의 총수를 곱하면 현금 배당에 약 3000억원을 사용했습니다.


LG화학은 2015년부터 배당을 늘리기 시작합니다. 


2015∙2016 사업연도에는 주당 현금배당금을 500원씩 소폭 늘렸구요, 2017∙2018 사업연도에는 주당 6000원의 배당을 실시했습니다. 최근인 2019 사업연도에는 배당을 확 줄인 게 눈에 띄는데요, 배당의 원천이 되는 순이익이 전년 대비 감소했기 때문이죠. 이에 따라 현금배당총액(우선주 포함)도 약 4600억원에서 1500억원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2019 사업연도를 예외로 치고 2018 사업연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1주당 1만원 배당은 기존 6000원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과거 500원, 1000원씩 배당을 늘렸던 것을 감안하면 과감한 결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LG화학이 발행한 보통주는 총 7059만2343주입니다. 1주당 1만원의 배당을 실시하면 7000억원이 넘는 돈을 쓰는 거죠. 여기에 우선주까지 포함시키면 약 7500억원의 현금이 필요할 것으로 분석됩니다.


LG화학은 충분한 현금을 갖고 있을까요? LG화학이 21일 발표한 2020년 3분기 경영실적자료에 따르면 올 3분기 연결기준 3조5500억원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옵니다. 이 자료만 보면 돈이 부족해서 배당을 실시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LG화학이 배터리 부문을 분사해 LG에너지솔루션을 새로 세울 계획이란 것이죠. 일반적으로 회사 분할은 각 사업별로 귀속된 자산을 기준으로 이뤄집니다. 그러나 현금 및 차입금 등 공통자산이 어떻게 분배되는지 정확한 기준은 실무자가 아닌 이상 알기가 어렵습니다. 간단히 표현하면 돈을 더 많이 떼어줄 수도 있고 빚을 떠넘길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시간을 돌려 9월 17일 LG화학이 회사분할 공시와 함께 올린 ‘분할계획서’를 보겠습니다. 여기에는 매우 구체적인 자산분할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현금, 매출채권, 재고, 차입금, 법인세자산 등 모든 영역의 자산을 어떻게 나눌지 이미 결정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출처: LG화학 분할계획서 / 자료=금융감독원.

눈여겨볼 것은 바로 현금 및 현금성자산 계정입니다. 분할 전 별도기준 LG화학은 2조3000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분할 후 LG화학의 현금은 5000억원으로 확 줄어듭니다. 나머지 1조 8000억원은 어디 갔냐고요? 신설 법인 LG에너지솔루션이 모두 가져갔습니다. 전기차 배터리 투자 확대를 위해 LG화학이 희생 아닌 희생을 한 셈입니다.


그런데 1주당 1만원의 배당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했듯 연간 최소 7500억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분할계획서 기준으로 LG화학이 보유한 현금은 올 상반기 5000억원 수준입니다. 단순 기계적으로만 계산하면 2500억원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출처: LG화학∙LG에너지솔루션 현금 보유량 / 자료=LG화학 분할계획서.

물론 그렇다고 배당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부족한 현금은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일 수도 있구요, 매출채권을 현금화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다만 앞으로 3년간 이 정책을 유지한다고 하니 현금 확보를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LG화학이 100%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지만 엄연히 다른 회사입니다. 아무 때나 필요에 따라 현금을 꺼내어 쓸 수도 없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연간 3조원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어 자금상황이 여유롭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LG화학은 지난 21일 컨퍼런스콜에서 석유화학 부문 투자와 관련해 “신흥시장에서 기회가 많지 않다”고 하며 M&A 가능성을 보수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여기에는 빡빡한 자금 사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By 리포터 김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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