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BBC의 긴 그림자 이어져 있는 곳 - Spendor Classic 4/5 스피커

조회수 2021. 2. 26. 15: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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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사운드

▲ 팔콘 LS 3/5a / 그라함 차트웰 LS 3/5a(좌우순)

BBC 모니터의 정통성은 이제 두 개 브랜드 - 하베스, 스펜더 - 에 남아 있어 보인다. 1974년 LS3/5a 의 발원 현장에 있던 라이센시들로부터의 BBC 웨이브가 이어져 있는 두 지점이기 때문이다. 밀레니엄 이후 유닛공급과 라이센스를 통합한 스털링 브로드캐스트는 다소 신세대적 컨템퍼러리로 변화했고, 최초 라이센시는 아니지만 원본을 보존하고 있는 그라함과 팔콘어쿠스틱의 네오클래식 버전들은 현재 가장 싱크로율이 높은 BBC 모니터들이다.

스펜더는 BBC 모니터의 출범 주체로서 론칭 이래 점선 구간 없는 직선으로 현재에까지 이어져 있다. 이제는 BBC의 태양계를 벗어나 더 이상 BBC 모니터를 제작하고 있지 있지만 180억 킬로미터를 떨어져서 여전히 지구를 바라보며 교신을 하고 있는 보이저 2호처럼 BBC의 긴 그림자를 드리운 채 먼 항해를 멈추지 않고 있다. A, D 라인업의 확장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면서도 여전히 브랜드의 핵심에 클래식 라인업을 지속 업데이트하고 있는 모습은 곧 50년이 되는 BBC 고목에 여전히 꽃이 피고 있는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최신작 4/5를 보고 들으면서 느껴지는 건 스펜더 가지에 피어난 2020년 판 LS3/5a의 새로운 꽃 향기이다. 꽃은 신선하고 강렬하지만 잎과 줄기에는 회고조가 감돌고 있다. 한 나무에서 피어난 꽃의 흔적이다.

 


스펜더 컴팩트 클래식

스펜더 4/5는 여러 모로 기존 클래식 3/5의 대체 업버전이자 클래식 LS3/5a 의 재해석 판이다. 스펙과 포맷이 거의 동일하며 2020년 시점에 맞게 대역과 크로스오버를 기반으로 하는 사운드 스타일이 다를 뿐이다. 지금은 브리티쉬 록의 시대가 아니라 BTS와 MQA의 세상이다.


본 제품은 스펜더 클래식의 막내로서 본 시리즈의 특성을 내려받고 있으나 제품의 사이즈가 컨셉을 조금 다르게 설정하게 해서 상위 제품들에서 보이는 울림의 미학이나 포만감 등은 상당히 절제되어 있다. 특히 최상위 클래식 200과 더불어 유일한 밀폐형 설계의 특징이 다른 제품과 다르게 나타난다. 여전히 BBC의 스펙을 따르고 있다는 증거로서 본 제품을 포함한 클래식 시리즈 전체는 방송국 레퍼런스 표준에 맞게 캘리브레이션되어 있다. 간단한 스피커이지만 안팎으로 세심하게 배려된 각 항목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제품이다.

미드베이스

우선, 스펜더 사운드스타일이 고스란히 담겨진 미드베이스는 바깥쪽에 눈에 띄는 특유의 페이즈 플러그, 그리고 보이지 않는 캐비닛 안쪽의 가볍고 견고한 마그네슙 합금 바스켓으로 구성되어 있다. 페이즈 플러그는 종종 콘에 사용되는 케블라 합성물로 제작되었으며, 6인치 구경의 폴리머 재질 콘으로 55Hz 대역까지 내려가는 새로운 낮은 대역의 한계와 파워핸들링 스타일에 대해 어떻게 구현시키고 있는 지 짐작되는 본 드라이버 유닛 시스템은 스펜더의 밀폐형 스피커에 맞게 설계된 대표적인 밀폐형 전용 유닛이다.

트위터

사운드 시그너춰가 되는 본 제품의 소프트돔 트위터는 안쪽으로는 광대역을 안정감있게 연속재생하도록 내입력에 강하고 에너지가 몰리는 순간에도 왜곡이 생기지 않도록 설계되었으며, 바깥쪽으로는 클래식 시리즈에만 장착되는 링 라디에이터 디자인의 굴곡이 들어간 제품이다. 돔의 외곽쪽, 전체 구경의 약 70% 정도 지점에 두터운 외곽선을 두른 이 디자인은 내부에서 보장된 선명하고 강한 고역을 직선반경이 아닌 넓은 반경으로 확산시키는 동시에 그라데이션을 지어 사라지도록 제작한 방식이다. 시청을 해보면 제작의도 그대로가 잘 반영되어 나타난다는 점도 본 제품의 특기할 만한 특성 중의 하나이다.

캐비닛 

본 제품의 캐비닛은 얇은 벽의 효과와 두터울 곳의 배합을 세심하게 조합시켰다. 수치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측면과 상단 판넬은 얇게 제작되었다. 특히 미드베이스에서 발생한 양감에너지를 두텁게 반사시키지 않도록 얇은 벽에서 소멸시키는 LS3/5a 스피릿을 절묘하게 살렸다. 대신 정면과 후면 패널은 두텁게 제작해서 유닛의 진동과 운동에너지에 견고하게 대응한다.


프론트 배플을 오리지널 LS3/5a 처럼 측면벽과 단차를 두어 안쪽으로 살짝 들어간 디자인으로 제작되었는데, 이 디자인 때문에 LS3/5a는 측면벽과의 반사를 고려해서 트위터 주변에 펠트를 부착시켰었지만 스펜더의 선택은, 전술했듯이 링모양의 라디에이터 트위터였다. 이로 인해 서로 뉘앙스도 퍼포먼스도 다르다. 이런 캐비닛의 성능을 위해 각 벽면과 패널사이에는 스펜더 특유의 마감재를 투입시켜 제작되어 있다.


클래식 4/5의 디자인은 뒷길이가 짧은 밀폐형의 전형을 따르고 있으며 아마 대역간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수도없이 음파를 흘려가며 최적의 지점과 캐비닛 두께, 그리고 재질을 선택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시청을 하는 동안 그런 생각은 점차 선명해져 갔다. 개인적으로 이 사이즈가 이런 소리를 내줄 수 있다면 스피커가 더 커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어진다. 다시 큰 스피커를 듣게 되면 또 경박스럽게 생각이 바뀌곤 하지만, 최소한 이 스피커를 대신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닌 채로 그러하다. 소리를 들어보기로 한다.


사운드 품질

의식하지 못한 채 들으면 선명하고 반듯한 북쉘프라고 여기고 지나칠 스타일을 지녔다. 맨 바깥쪽에서는 그런 소리를 들려주는 스피커이다. 하지만 이 스피커의 코어에 좀더 근접해서 살펴보면 꽤 여러가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 사이즈에서 나오기 어려운, 하지만 무리없이 자연스러운 베이스와 파워핸들링, 또렷하고 절도있는 어조, 공간 가득 메워가는 상위 대역 그리고 어느 곡에서나 여운을 살짝 드리우는 미드레인지 - 야누스같은 스피커이다.


이런 숫자 조합 네이밍을 가진 제품에 대한 사용자들의 궁금증을 고려해서 LS3/5a를 기준으로 얘기하자면 본 제품은 LS3/5a의 청아하면서고 거침없는 중고역이 좀더 또렷하고 넓은 대역으로 포괄하고 있다. 흔한 표현으로 현대적이고 섬세하며 플랫해서, 선명하고 포커싱이 또렷하다면서도 안정되어 있다. 음색의 밀도가 매우 촘촘하며 스테이징과 이미징 등 물리적 공간재현능력이 뛰어나다. 전술했듯이 이런 특성들이 주는 첫 인상은 오리지널 LS3/5a의 스타일과는 다르며 밀폐형 북쉘프의 장점을 스펜더의 방식으로 잘 이끌어낸 사운드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마리아 칼라스홀의 메인시청실에서 시청을 진행한 관계로 스트리밍이 아닌 CD로 시청을 하게 되어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여러 곡들을 시청하는 동안 이 제품의 스타일과 패턴이 쉽게 파악되었다. 가능한 필자가 아는 곡들로 시청하려 했으나 일부 곡들은 다른 시청시에도 사용하고 싶을 만큼 훌륭한 음원들이 있어서 그대로 시청소스로 했다.

리처드 용재오닐 - Mysterioso

리차드 용재오닐의 Archiv 레이블 데뷔작이었던 ‘Mysterioso’ 중에서 하이든 변주곡을 들어보면 본 제품의 트위터가 가장 표준적인 대역에서 어떤 특성을 보여주는 지 확인하기에 좋다. 카랑한 음색과 샤프하기 직전까지 돋아오르는 외곽선과 이미징이 드러난다. 배음의 단정한 처리도 그렇지만 이런 순간에 거침없이 경계를 넘어버리는 LS 3/5a 와는 접근방식이 많이 다른, 지휘자에 따라 잘 통제된 어쿠스틱을 보인다. 특히 안정감있게 꽉찬 밀도감은 밀폐형의 실질적인 장점이 많이 나타나는 스피커라고 생각되었다. 같은 음반에서 들어본 파헬벨의 캐논은 빠른 패시지와 높은 대역으로 이동하는 순간에서도 자극이 거의 없이 반듯한 윤곽을 그려내어 좋았다. 이 곡은 슬로우프가 급하고 작은 체구의 스피커들에서는 종종 거칠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Kelly Chen - A Lover’s Concerto

아직 신품상태인 게 간혹 느껴지곤 하지만 그런 상황을 굳이 감안하지 않더라도 매우 안정적인 대역재생과 밸런스를 보이며 높은 대역에서 왜곡이 없고 베이스에 부스팅이 이는 일이 없다. 보컬곡으로 들어가 본다. 핸드폰 광고 배경음악으로 잘 알려진 켈리 챈 버전 ‘A Lover’s Concerto’ 를 들어보면 얇은 레이어와 가는 톤의 음성을 흔들림없이 안정적으로, 그리고 입자의 매우 섬세한 느낌까지 잘 보여준다. LS3/5a 에서 자주 들었던 이 곡은 역시 거친 곳은 거칠게 매끈한 곳은 윤기있게 그려줬던 것에 비하면 새김이 깊고 잘 연마되어 있으며 에너지가 좀더 심화되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해상도가 꽤 높게 그려지는 건 아마 SPL DAC의 스타일이 사운드를 주도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아캄의 소리와는 다소 다른 해상도로 묘사되고 있다.

John Barry - ‘Ouf Of Africa’ OST

스테이징이 얼마나, 그리고 스케일이 어떻게 그려지는 지 ‘Ouf Of Africa’ OST 중 존 베리의 메인 타이틀을 들어보면,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합주 첫 소절이 지난 후 쿵 하고 내려찍는 권위감은 그리 충분히 들리지 않는다. 대신 오케스트라 합주가 시청실을 가득 채울만한 시청각과 포만감으로 들려서 좋았다. 이 부분에서도 LS3/5a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현악합주와 관악기의 조화로움, 그리고 분해력은 BBC 모니터와 계열이 다른 현대적인 해상도를 기반으로 한, 필자가 해석하는 바 고급스러운 스펜더적 밝음이다.

보컬곡들은 뭐든 아쉬움이 없이 좋았다. 다이아나 크롤의 매우 사실적인 이미징은 피아노와 심벌 기타가 섞인 전체 연주 속에서 일체감있고 도드라지게 잘 들린다. 심벌소리가 유난히 잘 들리는 이유도 아마 링 라디에이터의 성능에서 나오고 있어 보인다. 단정한 구간을 넘어서지 않는 한도내에서 화려하고 섬세하게 뿌려지면서도 거칠어지지 않는다. 입체감과 롤로그래픽은 최고수준인데 이보다 비싸고 큰 스피커들 좋은 재질을 사용한 유닛으로 만든 스피커들에 비해서 감성이 있는 샤프함이다. 보컬곡들을 들을 수록 패브릭돔을 사람의 보컬에 최적화시킨 상태가 아닐까 싶었다.

김현수 - Sogno

남성보컬도 다르지 않다. 테너 김현수가 부르는 ‘Sogno’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은 뛰어난 이미징이 먼저 돋보인다. 약간 높은 위치에 자리잡은 보컬의 모습을 기반으로 선명하게 동작묘사와 감정표현이 매우 호소력 짙게 들려온다. 중역에 컨트라스트를 강하게 두지 않고 매끈하게 연마시켜서 청순한 느낌을 준다. 선명하지만 예리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음이 마무리되는 순간의 딕션이 선명하게 들리고 다이나믹스 또한 낭비없이 무게가 실리고 있다. 보컬을 듣는 동안에도 파워핸들링에 대한 대응도 뛰어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했다.


같은 앨범에 있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는 다소 샤프하고 음역의 이동이 잦은데 각 음상과 대역의 변화를 잘 포착하고 선명하게 드러내주어 시종 선명하고 사실적이다. 발음을 하려는 동작과 표정이 잘 보인다. 보컬은 투티에서도 안정적이다. 녹음도 뛰어난 반주 기타는 명장 함춘호의 연주라서 기타를 감상하는 재미 또한 크다. 어쿠스틱이 편안하면서도 세세한 반주기타는 짧은 순간이지만 과부족이 없이 듣기 좋은 연주이다.


마리아칼라스홀 메인 시청실의 청음환경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사이즈도 라이브하지 않을 만큼 적당하고 잔향특성이 적절해서 특별한 음향보정물들을 사용하지 않고도 4/5에서 핀포인트와 스테이징이 홀로그래픽하게 잘 떠오른다. 앰프는 아캄의 SA-20, 심오디오 650D CDP와 SPL의 디렉터 DAC를 통해 시청했다. 처음엔 왜 30이 아닌 20이었을까? 싶었는데 SA-20으로도 84dB의 4/5의 베이스 드라이브가 그리 아쉽게 느껴지지 않아서, 이 정도 공간이라면 드라이브도 음색도 훌륭한 조합으로 추천하고 싶다. 물론 30이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BBC 모니터는 스펜더에 의해 진화중

스펜더는 본 제품을 출시하면서‘역대 가장 애교넘치고 아름답게 조화된 작은 스펜더’라고 소개하고 있다. 특별히 클래식 시리즈에 대해 ‘영혼’을 담고 있다고 하는 스펜더를 감안해볼 때, 영혼을 아름답고 조화롭게 표현하는 클래식 시리즈의 막내라는 데 동위하게 된다. 여전히 영국 본토에서 제작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같은 맥락이다.


LS3/5a의 애호가로서 여러 브랜드 버전들에 대한 기억이 마치 초저녁 대로변 가로등처럼 연속으로 점화되는 건, 앞서 말했듯이 본 제품의 뒤쪽으로 늘어서 있는 여러 레이어 - 대략 40년이 넘는 - 들이 하나 둘 늘어서기 때문이다. 이 스피커는 어느 날 문득 만들어낸 작은 스피커가 아니라 BBC 스피커를 50년 가까이 만들어 온 유구한 히스토리가 퇴적되어 있는 미니 모니터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여러 장르의 음악들이 고루 들리는 스피커로, 시간이 지날 수록 밀폐형 특유의 밀도감이 유사 사이즈의 스피커들과 차별화되는 성능으로 느껴질 것이다. 낮은 대역에 한계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그래서 여러 곡을 듣는 동안 그리 아쉬움을 남기는 곡이 많지 않은 나무로 만든 클래식 북쉘프의 가장 진화된 형태가 아닐까 싶다. 전용 스탠드라면 베스트가 되겠지만, 사이즈에 맞는 견고한 스탠드를 하나 구해서 쓴다면 좀더 본연의 사운드를 발휘할 것이다.


본 제품의 대상그룹을 잠시 떠올려보면 일반적으로 명쾌하게 탁 트인 사운드를 좋아하는 북쉘프 애호가 그룹, 여러 장르의 보컬곡을 미세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듣고자 하는 오디오파일, 그리고 고전적인 LS3/5a 컬렉터까지 들어간다. 각기 서로 다른 앰프를 사용하게 될 것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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