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스터는 스타벅스가 아닌 OOO 커피를 마신다

조회수 2019. 2. 18. 20: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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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동아비즈니스리뷰] 연남동이나 망원동, 픽시 자전거, 수제 맥주, 음악 페스티벌, 무인양품. 이들 모두 ‘힙스터(Hipster)’의 성지이자 아이템으로 유명세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막상 힙스터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운데요. ‘힙(hip·최신 유행이나 세상 물정에 밝은, 잘 알고 있는, 통달한)’한 사람을 두고 힙스터라고 한다는 건 잘 알려져 있지만 말입니다.

출처: The Beat Movement
(1950년대 비트닉)

본래 힙스터는 비주류, 반문화(counter-culture)를 상징하는 집단이자, 문화사적으로는 1960년대 히피 집단의 어원이기도 하다. 과거 힙스터는 흑인 재즈 뮤지션을 추종하는 백인 중산층 젊은이를 일컫는 말이었다. 재즈를 광적으로 즐기던 이들은 1950년대에 들어서 미국 샌프란시스코 헤이트애시베리 구역에 ‘비트닉(beatnik)’이라는 집단을 구성한다. 이들은 주류(mainstream)의 질서와 도덕에 반발하는 문학청년들이었다.

비트닉의 주요 정서인 주류에 대한 분노, 저항의식, 허무주의, 비관주의는 이후 1960년대 히피부터 펑크와 레게, 록과 힙합으로 이어져 기성세대의 안정된 삶과 보수적인 관념에 저항하는 하위문화(subcultures)로 자리 잡았다. 수없이 반복된 세대 간 갈등의 원형이 1940년대 힙스터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현대의 힙스터는 소비로 저항한다

출처: The Beat Movement(좌), 스타벅스(우)

그러나 2018년의 힙스터에게서는 그 반항적인 모습을 찾기 어렵다. 힙스터가 저항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힙스터는 '소비'를 통해 대항하고 있다.


그게 바로 힙스터들이 스타벅스 대신 ‘서드웨이브커피(third wave coffee)’를 마시는 이유다. 서드웨이브커피란 질 좋은 원두를 가지고 핸드드립이나 프렌치프레스로 내린 커피를 말한다. 힙스터들은 단순히 ‘남들과 똑같은 커피를 마시기 싫어서’가 아니라 스타벅스 커피의 제조 과정이 ‘나와 맞지 않기 때문에’ 다른 대안으로 서드웨이브커피를 선택하는 것이다.

출처: abec 바이크

문제는 힙스터들이 현대 시스템이 만드는 획일적인 것을 피하려다 보니 도리어 하나의 모습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한때 유행했던 픽시(Pixie)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와 같이 ‘힙스터스러움’을 공통적으로 나타내는 몇 가지 아이템으로 수렴하게 된다.


힙한 것을 쫓는 힙스터는 하위문화의 주체라기보다 얼리어답터, 프로슈머(참여형 소비자), 모디슈머(기존 제품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재창조하는 소비자)에 가까워 보인다. 시간이 갈수록 힙스터는 하나의 '스타일'로서 자리 잡았다.

한국의 힙스터? 현실과 타협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에서 힙스터는 바로 이 시점에서 문화 교류로 얻어진 결과물이다. 힙스터 문화는 일종의 집단의식을 만들어줬다. 천편일률적이고 위계적인 한국 사회에 불만을 갖고 있던 청년들에게 미국과 유럽의 힙스터 문화는 자신의 사회적 기반을 흔들지 않고도 ‘남다름’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문화사적인 역사에 공감하기보다 힙스터의 스타일로 자신을 설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힙스터는 현실에 투쟁하는 대신 타협하는 평범한 시민이 대부분이다. 대기업 사원으로,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도 힙스터 아이템을 갖추며 힙스터 스타일을 즐기는 ‘현실주의자 힙스터’가 대표적이다. 

(한국형 현실주의자 힙스터 사례. 대기업 통신사에 근무하면서도 일 년에 서너 번은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여행지로 여행을 다녀오는 30대 초반의 한 힙스터는 “워라밸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에 그는 추석 연휴를 이용해 남미 3개국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겨울 승진심사를 통과했다.)

음식 재료를 살 때 주말마다 직판 시장에 간다든가, 건물 옥상에 정원을 만들어 놓고 직접 수확하는 식으로 '힙한 생활 혁명’을 이루는 힙스터는 많지 않다. 대신 현실주의자 힙스터는 식품 전문 쇼핑앱 ‘마켓컬리’나 ‘헬로네이쳐’에서 생산자 사진과 함께 소개되는 친환경 농산물을 구입한다. 한국에서 힙스터와 비즈니스의 접점은 현실주의자 힙스터에게서 찾을 수 있다.

불편한 식당을 찾는 이유

현실주의자 힙스터들의 취향을 저격한 사례를 살펴보자.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코브라파스타클럽, 홍대 인근의 버터밀크, 경기도 고양시의 양지미식당, 제주도 주르레식당. SNS에서 가장 핫한 이 음식점들의 공통점은 ‘불편하다’는 것이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coco7341) 캡처
(1인 식당 망원동 코브라파스타클럽. 2인 테이블 2개, 4인 테이블 1개가 있는 작은 식당이다)

우선 이 음식점들은 찾아가기 쉽지 않은 위치에 있다. 망원동 이탈리안 레스토랑 코브라파스타클럽은 예약하기도 매우 까다롭다. 매일 밤 10시 반에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다음날 예약을 신청받는데 선착순이라 1분만 늦어도 예약에 실패하기 일쑤다. 홍대 인근의 팬케이크 전문점 버터밀크는 예약을 아예 받지 않고, 오픈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서야 겨우 개점시간에 맞춰 입장할 수 있다. 들어가서도 음식이 나오려면 30분은 넘게 걸린다.

출처: 네이버 스토어
(홍대의 버터밀크)

현실주의자 힙스터는 이런 식당을 놓치지 않는다. 유명한 맛집이 아니더라도 주인이 직접 재료를 사 와서 주문받고 만드느라 느리게 제공되는 음식점은 요즘 매우 힙한 장소다. 현실주의자 힙스터들에게 기다림, 불편함 같은 요소를 이길 만한 가치를 주기 때문이다.


이런 ‘힙’함은 ‘슬로시티(Slow City)’나 ‘슬로우 푸드(Slow Food)’ 같은 사회 운동이 추구하는 ‘느리게 살기’와는 다르다. 슬로푸드 운동은 생활양식 전반을 바꾸려는 것이지만 힙스터의 ‘불편한 식당’은 체험에 가깝다. 제공된 불편함을 즐기는 일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느리게 살기’의 취지에 공감하는 현실주의자 힙스터들은 단지 그것을 체험함으로써 현실과 타협한다.

한국형 힙스터를 공략하라

출처: JTBC
(제주도로 떠난 힙스터 이효리)

한국의 힙스터들은 힙한 스타일을 수입해 옴으로써 아이템과 몇 가지 행동 위주로 집단을 형성해왔다(물론 그중 일부는 미국과 유럽의 진짜 힙스터처럼 생활하거나 농담처럼 ‘효리를 따라 제주도로 이사’ 가기도 한다) TV를 보지 않고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힙스터, 음반을 사지 않지만 음악 페스티벌에는 참여하는 힙스터같이 힙스터의 현실 타협 지점에는 '힙스터스러움'을 소비하고자 하는 일반인에게도 적용되는 힙한 것들이 많다.


그들의 스타일은 그 자체로 수많은 현실주의자 힙스터, 그 뒤를 따르는 힙스터 추종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작지만 영향력 있는 시장을 끊임없이 창출해내고 있다. 힙스터 스타일을 완성시켜줄 수 있는 아이템과 장소를 파악해 선점하고, 궁극적으로는 소비의 형태로 힙한 스타일을 따라오는 현실주의자 힙스터를 공략할 지점을 찾아야 한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43호
필자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필자 약력

-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졸

- 여성주의, 문화학, 인류학 및 사회학 분야에서 언론인으로 활동 중


미표기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인터비즈 홍예화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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