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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300만원 대신 30만원짜리 일 10개하는 세상 온다"

조회수 2020. 9. 18. 13: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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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먹는 정신과 의사가 24년 전 "죽일 테면 죽여봐" 외친 이유
책·칼럼 등 쓰는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대학 때 쓴 뮤지컬 24년만에 다시 공연
"취업'준비'만 하지 말고 일단 시작해보라" 조언

그는 정신과 의사다. 건국대병원에서 일한다. 동시에 의대생을 가르치는 건국대 교수다. 정기적으로 책이나 심리에 관한 글을 쓰니 칼럼리스트로 불러도 된다. 1년에 1~2권씩 심리학·정신분석학에 관한 대중서적을 펴내는 작가이기도 하다. 취업준비생, 직장인 등 다양한 환자를 상담하면서 얻은 깨달음을 알기 쉽게 풀어쓴다. 2004년부터 '공부중독' '심야치유식당' 등 16권을 펴냈다. 2007년 쓴 '소통의 기술'은 7만부가 팔리는 등 수십만권 책을 팔았으니 그냥 작가가 아니라 베스트셀러 작가다. 주인공은 바로 하지현(50) 교수다.  

최근에 직업이 하나 더 생겼다. 뮤지컬 작가. 6월 25일까지 공연하는 '죽일 테면 죽여봐'라는 작품을 썼다. '스펙 좋은 대기업 사원이 교통사고로 죽은 뒤 가난한 실업자로 환생한다'는 내용이다.


1993년 대학생 때 연극 동아리 공연을 위해 썼던 극본을 24년 만에 전문 극단이 다시 작품으로 만들었다. 2017년판 공연을 본 관객들은 '(우울한 마음이 치유된다는 의미로) 항암 뮤지컬' '삶에 지친 사람에게 추천하는 뮤지컬'이라고 평했다. 

인생에 정해진 길이 있다면 행복할까?

뮤지컬 주인공 광수는 "인생은 계획한대로 열심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자세로 공부·취업·연애 등 인생의 목표를 성취해왔다. 하지만 사고 이후 환생한 몸은 갓 실직해 공원 벤치에 누워 있던 사람이다. 조건이 달라지자 삶도 달라진다. 연인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남루한 모습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1993년 '죽일테면 죽여봐'를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86학번입니다. 민주화 전인 1990년 이전에는 주로 '사회 변혁'을 다룬 연극이 많았습니다. 1993년 졸업 작품을 기획하면서 '이제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라는 공감대가 생겼습니다. 당시에는 대학을 나오면 취업이 잘됐어요. '삶의 경로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죠. '과연 이게 제대로 사는 것인가'를 묻고 싶었습니다." 

출처: 죽일테면 죽여봐 제작진 제공
1993년 첫 공연 때와 2017년 다시 제작된 창작 뮤지컬 '죽일테면 죽여봐'

주인공 광수는 "겉모습이 바뀐다해도 늘 하던 대로 열심히 할테니 '죽일 테면 죽여봐'"라고 외친다. 극본은 '다가올 인생이 설레면서도 불안한 젊은이의 고민'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정해진 삶을 열심히 사는 주인공과 반대 캐릭터인 '자학'을 만들었다. 그는 사회시스템을 거부하며 환생할 때마다 자살해버린다.


하 교수는 최근 경험을 말했다. "얼마 전 만난 10대가 '저는 태풍이 제일 부러워요. 진로가 정해져 있잖아요'라고 하더군요. 24년 전 청춘들의 고민이 여전한거예요." 


-그때도 방황하던 청춘이 있었나요?

"첫 공연 때 '자학'역을 맡았던 후배가 있었어요. 졸업하고 친구 2~3명이 시작한 게임회사에 들어갔어요. 대기업도 골라갈 수 있던 시기인데 말이죠. 정해진 길 대신 모험을 한거예요. '쟤가 어쩌려고 그러나' 싶었습니다. 4~5년이 지나자 게임산업이 커지면서 후배도 함께 성장하더군요. 그 회사가 네오위즈였고, 그 후배가 한국게임산업협회장까지 한 최관호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방황은 결단이었고 후배는 친구들 가운데서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출처: 하지현·최관호 제공
사진 왼쪽은 1993년 공연 때 모습이다. 목에 밧줄을 걸고 있는 배우가 '자학'역을 맡은 최관호 엑스엘게임 대표다. 그는 최근 다시 제작된 공연을 보고 같은 배역을 맡은 배우 홍경인씨와 함께 했다.

하 교수는 "취업 등 상황이 어렵더라도 낙관적 사고를 가지고 일단 판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요즘 '열심히 준비하고 있고, 완전히 준비가 되면 알아서 할테니 그 전까지는 간섭하지 말라'는 젊은이를 자주 만납니다. '준비'라는 이름으로 결과 없는 공부만 열심히 하고 있는 거죠. 아예 경기를 하지 않음으로써 '지지 않는 상태'가 되려는 겁니다."


그는 요즘은 특정 직장·직업이 아닌 '나라는 사람을 규정할 수 있는 일'을 찾는게 트렌드라고 했다. "과연 앞으로 60세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직장이 있을까요? 의사도 AI 시대에 없어질 직업 중 하나입니다. 좋은 직업에 대한 기준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그는 일본 책 '3만엔 비즈니스-적게 일하고 더 행복하기'를 예로 들었다. 월급 30만엔(약 300만원)을 받는 일자리 대신, 한달에 이틀만 일하는 3만엔(약 30만원)짜리 일자리 10개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대신 "어떤 길을 선택해도 불확실성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실패를 견디는 힘을 키워야 한다"라며 "타석에 들어서서 경험치를 쌓으며 마음의 체력을 길러야 한다"라고 말했다. 

취업, 직장생활, 결혼에 대한 고민

20년 가까이 정신과 의사로 일하다보니 환자들이 공통점이 있었다. "소소한 문제를 잘 해결해왔더라도, 각 연령대별로 중요한 과제를 넘지 못할 때 많이 힘들어 한다"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대에게는 취업, 30대에게 결혼 등이다. 그가 많이 들었던 질문과 대답을 소개한다.


Q. 취업이 안돼 고민이에요. 첫 직장이 쭉 간다고 하니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으로 시작하긴 두려워요.

"공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누군가가 가르쳐준 걸 외워서 문제를 풀면서 배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후자를 너무 등한시합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아무리 공부해도 직접 타보는 것보다는 못합니다. 직장생활을 빨리 경험하다보면 다른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이를 위해서 취업 '준비' 기간을 정해놓는 게 좋습니다.


최근 조사 결과를 보니 졸업 후 3년이 지나면 서류 합격률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2~3년 안에 입사해 경력자가 되길 추천합니다. 직장에 들어가면 새로운 고민이 또 생깁니다. 당장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보다 내 인생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


Q. 회사에서 배우는 게 없어서 고민이에요.

"회사는 일하는 곳이지 배우는 곳이 아닙니다. 회사는 주로 시스템으로 돌아갑니다. 직원 한 명이 머리로 엄청난 기획을 해서 회사를 위기에서 구하는 일 같은 건 없습니다. 직장 초년생에게 '복사만 하다가 인생이 끝날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자주 해주는 조언이 있습니다. '복사만 해도 매달 300만원 주는데 얼마나 좋으냐. 근데 복사도 똑바로 해라. 배우는 게 없다고 툴툴대면서 복사도 제대로 못하는 것만큼 짜증나는 것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복사가 아닌) 다른 일을 시킬 것이다.'


Q. 여러가지 이유로 결혼이나 출산을 할 엄두가 안납니다. 혼자 지내는 게 자유롭지만 때로는 가족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비자발적인 결혼 기피 현상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결혼 연령이 늦어지거나 아예 결혼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은 일종의 흐름이 됐습니다. 하지만 '혼자가 편하지만 때로는 가족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고민하고 망설일 때도 있습니다. 비혼이나 저출산을 해결하려면 전통적인 압력을 줄여야 합니다.


사회구조적인 문제 못지 않게 생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게 필요합니다. 부모 세대들이 어느 정도 기대치를 낮춰야 해요. 또 하나는 결혼이 아닌 다른 사회계약도 법적으로 지지해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결혼은 하지 않고 동거만 하는 커플이 낳은 자녀도 제도적으로 차별받지 않게 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글쓴이가 개인적으로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Q 열심히 노력해 성공한 사람을 소개해도 부정적 댓글이 붙습니다. '금수저였을 거야' '저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어'. 그런 의견 때문에 소개한 사람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제 이름 한 번 인터넷에 쳐보세요. 욕 많이 먹습니다. '서울대 나와서 안정적으로 의사하니까 편한 소리 한다' '그 정도 말은 나도 하겠다'…. 대중 앞에 서기로 결심했다면 감당해야 할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나쁘게 말한다고 해서 당사자가 이룬 성취나 행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이 상처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글 jobsN 감혜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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