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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준비됐어?' 삼둥이가 자주 쓰는 말 만든 사람은?

조회수 2020. 9. 22. 15: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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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보고 울면서 글쓰던 작가' 손끝에서 나온 작품, 어린이 영웅 '로보카폴리'..애니작가의 삶
문장부터 작품 줄거리까지 만드는 스토리 작가
"작가들, 자긍심 가질만한 적절한 대우 필요"
영화감독→드라마 작가→애니메이션 작가의 길

밥상 앞에서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치게 만들었다는 애니메이션 ‘로보카 폴리’. 4~9세 아이를 둔 부모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EBS에서 시즌 4까지 방영했던 만화영화다.


로봇으로 변신하는 경찰차 폴리, 힘센 변신 소방로봇 로이, 다친 자동차를 치료해주는 구급 로봇 엠버와 헬리콥터 로봇 헬리, 이런 구조 로봇들을 수리하는 말괄량이 여자아이 진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로보카폴리는 우정사업본부에서 한국의 캐릭터 시리즈 우표로 발행했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 타이완, 러시아, 일본 이스라엘, 오스트레일리아 등 전 세계로 수출되기도 했다.


이런 작품의 스토리(각본)을 쓴 메인작가는 바로 안지민(37)씨다. 로보카폴리 ‘시즌1~4’ 가운데 시즌 1, 3, 4화를 담당했고 시즌 2의 1화를 맡았다. 이후 어린이 애니메이션 '코코몽', '두다닥쿵' 제작에 참여했고, 강철소방대 파이어로보 각본도 담당했다. 내로라하는 국내 유명 애니메이션이 그의 손을 거친 셈이다. 2012년 평균 시청률 6%, 최고 시청률 10%로 EBS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만큼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안 작가는 작품에 골몰하면 잠자고 밥 먹는 시간 이외에는 모두 책상 앞에 있었다고 했다. 애니메이션 작가의 삶은 어떨까. 영등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출처: 본인 제공
안지민 작가.

대사 한 문장부터 작품 줄거리까지 만드는 스토리 작가 

-애니메이션 스토리 작가는 어떤 일을 하나요


“만화영화의 전체 줄거리를 짜는 일부터 대사 한 문장, 한 문장을 뽑아내는 일까지 합니다. 기획에도 참여하고요. 한 사람이 이런 일을 모두 하기도 하지만, 줄거리만 짜거나 대사만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줄거리는 어떻게 만듭니까


“가령 감독님이 로봇 구조대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큰 주제를 줍니다. 그러면 작가가 시대와 장소가 될 배경부터 구상하죠. 미래 시대를 배경으로 할지 현재 혹은 과거가 로봇물의 배경이 될지 고릅니다. 장소도 도시냐, 농촌이냐를 따질 수 있죠. 이런 게 기본이고, 주인공은 몇 명으로 할지, 캐릭터 성격은 어떤지, 그 캐릭터들에게는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대개 어린이들이 많이 보는 애니메이션은 1화가 10~12분짜리인 경우가 많다. 26화 정도로 구성된다. 1~26화로 이어지는 큰 줄거리와, 1화 분을 끌고 가는 작은 줄거리가 씨실 날실처럼 이어져야 한다.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고 구성이 촘촘해야 좋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출처: EBS 홈페이지 캡처
EBS에서 방영한 어린이 애니메이션 로보카 폴리.

-각본을 쓴 대로 작품이 나옵니까


“꼭 그렇지는 않아요. 감독님이나 스태프들과도 상의를 해야 합니다. 비용 문제나 기술적인 부분도 고려합니다. 가령 너무 화려한 장면을 많이 넣어달라고 하면 스태프가 ‘어휴 나 이거 못해’ 하는 일도 있어요. 돈이 너무 많이 들면 제작자가 말리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을 회의에서 조율합니다.”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습니까


“소설책, TV 드라마, 영화, 만화책, 친구들과의 이야기…거의 모든 것들이 이야기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가령 구조로봇 이야기를 만든다고 하면 구조대, 소방관, 로봇과 관련한 모든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밥을 먹거나 잡담을 하다가도 ‘이거 괜찮겠다’ 싶으면 대사나 배경 같은 걸 따로 정리해둡니다. 그리고는 책상 앞에 앉아서 차근차근 풀어내죠. 하루 동안 길게는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책상 앞을 못 떠나기도 합니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할 때도 있을 텐데요


“그럴 때는 전문가를 찾아갑니다. 가령 애니메이션 에피소드로 지하철 사고 장면을 넣는다면 기관사님께 직접 물어봅니다. 누전 문제로 사고가 날 가능성은 있는지, 제동장치를 작동하면 문제가 안생기는지, 브레이크는 버튼을 누르는지 아니면 레버를 잡아당기는지도 물어봅니다. 취재에 가깝죠.”


대략 10분짜리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대사는 A4 용지 기준 워드프로세서로 9~12매가 나온다고 했다. 한 페이지에 담긴 대사와 장면 묘사로 1분을 넘기는 식이다. 이렇게 1화 분을 만드는데 대개 일주일이 걸린다.


그는 한번 작품을 맡으면 계절이 두 번은 바뀌어도 잘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보통 한 작품을 끝내는데 6개월이 걸린다는 뜻이다. 각본을 쓰는 동안은 친구들과도 자주 만나지 않는다.


-언제 가장 보람을 느낍니까


"작품이 끝날 때까지 마음에 드는 대사 한문장이 나오면 아주 잠깐 '이게 정말 내가 만든 게 맞나?' 하는 희열이 생깁니다. 그 몇초를 위해서 만드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어요."


로보카폴리에 나오는 대사들은 '모두 준비됐어?', '힘을 내자' 같은 단순한 것들이 많지만, 배우 송일국씨의 삼둥이 아들들이 방송에서 따라할 정도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출처: 본인 제공, KBS 캡처
익살스런 표정으로 셀카를 찍은 안지민 작가. 배우 송일국씨는 자녀들이 로보카 폴리를 좋아해 아이를 돌볼 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대부분 작가 생활 힘들어, 자긍심 가질만한 적절한 대우 필요"

애니메이션 메인 작가들의 평균 소득을 물었더니 “회당 120만~150만원쯤 받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일주일에 1편씩 4편이면 한달에 600만원 받는다고 봐도 됩니까


“그렇게 받을 수 있으면 정말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작품 하나를 한 작가가 모두 맡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가령 26화(6개월) 분을 만든다고 했을 때 작가 4명한테 쪼개주기도 합니다. 이 작가들은 6개월 동안 6~7화, 900만원 정도를 받는 겁니다. 월 150만원 정도 되는 거죠. 그동안 다른 일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애니메이션 작가의 삶이 힘들다는 뜻인가요


“수입이 적은 것 말고도 어려운게 많습니다. 계약대로 각본 쓰고 돈 받는 게 운이 좋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10화 분량의 각본을 계약했는데 한두 편 보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보내는 일도 있습니다. 계약이 미뤄지는 일도 많아요. 작가가 각본을 다 넘겼는데 작품 방영이 미뤄졌다며 돈을 주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가끔 내가 휴지통 쓰레기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한 번 쓰이고 버려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작가들이 직업적인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합니다.”


-다른 어려움도 있습니까


“저작권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사 하나, 배경 하나하나가 작가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인기를 끈 작품이 책으로 출판 돼도 작가의 권리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고도 작가의 삶을 택한 건가요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첫 작품이 로보카폴리였고, 성공한 작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전까지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출처: EBS 홈페이지 캡처
안지민 작가가 제작에 참여했던 애니메이션 파이어로보(왼쪽)와 코코몽.

영화감독→드라마 작가→애니메이션 작가의 길

그는 20대에 영화감독을 꿈꾸는 학생이었다고 했다. 24살부터 영화에 몰두했다. 영화 촬영을 시작했다가 마무리하지 못하고 끝낸 작품이 2개라고 했다. 제작비가 발목을 잡았다 “제작사 대표는 기다리라 하고 돈은 나올 곳이 없었습니다. 전반부만 작업하다가 엎어지기 일쑤였습니다.”


투자를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그 시간동안 다른 할일을 찾아야 했다. “다른 감독님들이 썼던 시나리오를 제 식대로 고쳐보기도 하고, 시나리오를 직접 써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제법 괜찮게 썼다고 생각한 시나리오는 투자사를 찾지 못했고, 그렇지 않은 작품은 퇴짜를 맞았다. 29세, “내가 정말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가 고민을 했죠.”


글쓰기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보자고 마음먹었다. 그가 찾은 일은 방송국 보조작가였다. “3년 정도 글만 썼어요. 자료조사부터 조연들 대사를 쓰거나, 줄거리를 잡기도 했습니다.”


그는 드라마가 방영되기 시작하면 “벽보고 울 정도로 글을 썼다”고 말했다. 사전 녹화를 하지 않은 드라마의 경우 ‘초치기’를 하는 일도 있다. 촬영 직전에 완성된 대본을 배우들에게 넘겨주고 녹화를 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밤잠을 설치는 일도 다반사라고 했다. 이렇게 글을 쓰다 애니메이션 스토리 작가로 전업한 것이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계속 글을 써야겠죠.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구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기회가 되면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애니메이션 작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조언한다면


“자기 작품을 수정할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든 자기 작품을 수정해야 할 순간이 옵니다. 칭찬받는 일은 별로 없어요. 끊임없이 자기 작품이 비판받는 걸 보고 들어야 합니다. 그걸 견뎌내야죠, 그리고 그때 더 좋은 작품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글 jobsN 이병희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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