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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에 연봉 4억..40대 초반이면 40억 벌 수 있었습니다"

조회수 2020. 9. 27. 22: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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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놓고 돈 먹는 억대 연봉일 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로보어드바이저 ‘불리오’ 개발한 천영록 두물머리 대표
연봉 4억원 찍었던 파생상품 트레이더 출신
“국내 전무한 자산관리 생태계 만들고파”

유명 증권사에서 선물 옵션 트레이더로 일했다. 100억원가량을 굴렸다. 매일이 전쟁이었다. 실적이 안 나와 잘리는 선배, 동기, 후배를 숱하게 봤다. 살아남기 위해 기를 썼다. 하루에 2.6억원을 버는 날도 있었다. 증권계에 발을 들인지 5년 만에 연봉이 4억원이 됐다. 이대로 10년 이상 쭉 가면 40억원을 벌 수 있었다. 안도가 됐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삶에 대한 도전이 벌써 끝난 것 같았다. 트레이더 7년차에 다 버리고 스타트업을 차렸다.


로보어드바이저 ‘불리오’를 만든 천영록(38) 두물머리 대표 이야기다. 불리오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 세계의 자산군 중 장기 투자할만한 펀드를 매달 5개씩 자동 추천해주는 서비스다. 가격이 오르는 구간을 만난 자산군에 투자하고, 떨어지는 구간에 처한 자산군을 팔도록 안내한다. 월 2만원을 내는 유료 서비스다. 쉽게 말해 투자할만한 펀드를 찍어주는 것이다.

출처: jobsN
천영록 두물머리 대표.

지난 2월 14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만난 천영록 대표에게 단도직입적으로 “검증된 건가”라고 물었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전 세계 시장마다 상승과 하강 국면이 있다. 유리한 구간에서 선별적인 투자를 장기적 안목으로 하면 돈이 무조건 벌린다. 말이 쉽지 행동은 어렵다. 리스크를 관리하며 고객을 설득하고, 5년 넘게 장기간 함께 투자하도록 응원하는 게 우리 서비스다.”

와디즈 펀딩 최단시간·최고금액 모집 기록


두물머리는 국내 자산관리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 중 규모가 가장 크다. 2017년 불리오 서비스를 시작해 유료 가입자가 3000여명이다. 작년 10월 영업을 개시한 두물머리 투자자문사는 벌써 260억원의 자문 자산과 1100여건의 투자자문 계약을 기록했다. 올 1월부터 약 한 달간 진행한 와디즈 펀딩에서는 당초 목표 금액(3억원)을 5분 만에 채웠고, 3시간 만에 목표금액의 3배를 모았다. 이후 펀딩 금액을 15억원으로 증액했는데 이 또한 무난하게 달성했다. 와디즈 펀딩 사상 최단시간 최고금액 모집 기록이다. 현재 기업가치는 165억원이다.

출처: 와디즈 홈페이지 캡처·두물머리 제공
와디즈 펀딩 마감을 3일 앞둔 지난 2월 11일 기준 모금액이 목표인 15억원을 넘었다. 오른쪽은 두물머리의 불리오 서비스 사용자 현황.

회사명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처럼 IT와 금융을 섞겠다는 뜻으로 지었다. 천 대표가 “창업으로 골치를 앓는 중 두물머리에 가서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을 했다”며 “투자자들에게도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을 주겠다는 의미도 담았다”고 했다.


천 대표는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01학번이다. 20세기 최고의 펀드 매니저라 불리는 ‘조지 소로스’를 동경했다.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외환 투기꾼’이라고 불릴 정도로 악독하게 돈을 벌면서도 사재 수십조원을 출연해 비영리재단을 꾸려 사회에 기여하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천 대표는 “조지 소로스가 자본주의의 양극단에 있는 것들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매력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였다”며 “나도 자본주의 시스템의 핵심을,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그 심장부를 알아보자는 생각에 트레이더가 됐다”고 했다.

출처: 천영록 대표 제공
사업설명회를 하는 천 대표.

현실보다 이상을 좇다


그는 2008년 키움증권에 입사해 선물옵션 트레이딩룸에 들어갔다. 매일 긴장된 삶이었다. 파생상품 트레이더는 금융 시장 리스크가 실적에 직결되는 자리다. 현재 내리는 의사결정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다. 천 대표도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살았다고 했다. 실적을 내지 못한 천씨의 후배들은 줄줄이 회사에서 잘려나갔다. 그는 벽돌 하나하나 쌓는다는 기분으로 그만의 매매기법을 키워나갔고 노하우도 생기면서 업계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이를 통해 스트레스 관리법과 근성을 배웠다”고 했다. 천 대표는 KTB투자증권, IM투자증권(현 메리츠종금증권)으로 자리를 옮겼고 연봉은 점차 올라 4억원까지 찍었다.

출처: jobsN
천 대표.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살았습니다. 막상 억대 연봉을 받으니 돈보다는 ‘이만큼 내가 스스로 해냈다’는 만족감이 더 컸죠. 그리곤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하는 돈 놓고 돈 먹는 일이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하는구나.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라고요.”


천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니콘 기업들이다. 그는 “유니콘들은 자기들의 서비스로 사회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훨씬 가치 있는 일을 하더라”며 “그런데 그들은 돈도 더 잘 버는 게 새로웠다”고 했다. “증권업계에서는 따뜻한 이야기, 이상적 이야기 하는 것을 터부시해요. 지독히 현실주의적이죠. 유니콘을 보면서 잊고 있던 이상이 떠올랐다고 해야 할까요. 눈앞의 연봉에 청춘을 다 바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일에 도전하는 수천억의 회사를 만들겠다고 그때 다짐했습니다.”

출처: 천영록 대표 제공
사업 초기 직원들과 함께한 천 대표.

“로보어드바이저는 알파고가 아니야”


2015년 9월 천 대표는 두물머리를 차렸다. 수개월간의 고민 끝에 사업 아이템은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금융 분야를 택했다. 처음엔 일주일마다 수백개가 나오는 ELS(주가연계증권)를 비교 분석해 알려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반응은 좋았지만, 수익화가 어려웠다. 사업 방향을 바꿨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글로벌 로테이션 전략(전 세계 자산이 상승과 하락 구간을 반복하며 장기적 추세를 만드는 것)’을 적용한 로보어드바이저 불리오를 개발했다.


천 대표는 “운에 따라 투자의 성패가 갈리는 것이 아니라, 20년·50년 후에도 적용할 수 있는 투자의 원칙을 찾으려 전 세계 논문 200여편을 분석하고 연구했다”며 “한 달 간 3%의 수익률을 내는 로직(논리)은 없지만 5년에 10~40% 버는 방법은 찾았다”고 했다. “120년 정도에 걸친 데이터를 분석하면 전 세계적으로 지수와 작용하는 요소가 3~4개 있어요. 그 중 하나가 ‘지수의 관성’입니다. 상승 구간에 진입하면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은 상승을 유지하는 것이죠. 이러한 유리한 구간의 상품을 선별적 투자하고 관리해 충분한 장기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출처: 두물머리 제공
세전수익률 기준 불리오 실적.

천 대표는 “그렇다고 우리 서비스가 알파고와 같다고 보면 큰 오산”이라고 했다. 실제로 불리오의 운용 수익률은 2017년 7~14%(안정적인 상품은 7%, 고위험 고수익 상품은 14%), 2018년은 -7~1%다. 작년은 안 좋았던 전체 장에 비해서 선방했지만 고수익률은 아니다.


인공지능 알파고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통해 엄청난 고수익을 내는 자동화 기계라면, 현재 개발된 불리오 등 로보어드바이저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원리를 통해 중수익으로 안정화하는 장치라고 천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로보어드바이저를 쓰면 자동으로 떼돈 번다는 것은 전형적인 사기”라고 단언했다.


그는 두물머리를 통해 국내 자산관리 생태계를 꽃피우고 싶다고 했다. 그는 “현재 국내엔 자문업 관련 규제가 겹겹이 쌓여 있고, 그나마 자문업을 간판으로 단 곳들은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데 집중했다”며 “일반인이 믿고 맡기는 자산관리서비스가 필요하고 이를 두물머리가 하고 싶다”고 했다.


글 jobsN 김성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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