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열하는 모습에..성형외과 의사 아들은 의사 대신 이걸 택했다

조회수 2020. 9. 18. 15: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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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기 아이들의 고통 줄여주려 창업했습니다"
노경석 밸류앤드트러스트 대표
패브릭으로 만든 척추측만증 교정기 개발
“척추측만증 환자의 삶의 질 높이는 게 목표”

척추는 몸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정상적인 척추는 앞에서 보면 일직선으로 곧다. 하지만 생각보다 허리가 휜 사람이 많다. 척추 휘어짐 정도가 20도 이하일 때부터 적극적인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악화할 수 있다. 40도 이상 휘어질 경우 척추가 장기를 누를 수 있어 큰 수술을 해야 한다. 잘못된 자세 등이 척추 측만증의 원인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검증되지 않았다. 사실 대부분의 척추측만증의 원인은 미상(未詳)이다. 척추측만증은 성장기 아동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척추측만증 환자 중 44%가 성장기 아동이다. 특히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

척추측만증이 심할 경우 ‘갑옷’ 같은 교정기를 착용하고 하루 18시간 이상을 견뎌야 한다. 사춘기 아이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병원에서 교정기를 착용해야 하는 척추측만증 확진 판정을 받은 아이들은 어김없이 오열한다. 노경석 밸류앤드트러스트 대표는 이러한 광경을 많이 목격했다. 30대인 그는 세계 최초로 패브릭과 강화 소재로 만든 척추측만증 교정기를 개발했다. 4월17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노 대표는 창업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척추측만증으로 병원을 찾은 아이들의 표정은 전부 우울해요. 혹시나 하고 병원에 왔다가 교정기를 착용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난리가 나죠. 의사 입장에서도 교정이 필요한데 교정기를 착용하라고 진단을 내리기엔 너무나 부담스럽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창업의 시작이 됐습니다.”

출처: jobsN
노경석 대표.

의사 꿈꾸다 의료기기 회사 영업사원으로


성형외과 의사였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노 대표는 커서 외과의사가 되고 싶었다. 일찍 유학을 떠나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의사의 꿈을 품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프랭클린앤마샬칼리지에서 프리 메드(Pre-Med)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시민권 없이 의사 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한국에 있는 의학전문대학원을 가기로 계획을 수정했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의전원 입학을 준비하다 접속한 의료기기 회사의 홈페이지를 본 후, 노 대표는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세계 최대 의료기기 회사인 ‘메드트로닉’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예전에는 ‘우리의 기기로 5초마다 1명의 생명을 구한다’라고 돼 있던 문구가 해가 갈수록 빨라져 3초마다 1명을 구한다고 적혀 있더라고요. 의사가 돼서 환자 개개인을 치료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의료기기 회사에 들어가 넓은 범위에 의료 혜택을 주는 일이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출처: 밸류앤드트러스트 제공
메드트로닉코리아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당시의 노 대표(오른쪽).

그는 2010년 메드트로닉코리아에 입사했다. 영업직을 맡았다. 그는 “영업은 처음이라 초반엔 힘이 들었지만 하다 보니 적성에 맞았다”며 “내가 했던 영업은 제약회사 영업과는 달리 대학병원 의사를 상대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새로 나온 의료기기를 의사들에게 소개하고, 효과를 검증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의료기기 회사에 입사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요. 의사가 됐다면 이렇게 큰 의료 서비스 시장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거에요. 영업을 하면서 우리가 생각보다 혁신적인 의료기기의 혜택을 많이 보고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렇게 4년을 다녔다.

출처: 밸류앤드트러스트 제공
기존 척추측만증 교정기 착용 모습. 환자들은 두꺼운 플라스틱 교정기를 하루 18시간 이상 착용해야 한다.

“세상에 없는 의료기기 만들자”며 창업


노 대표는 친구 따라 창업한 경우다. 그는 “대기업에 다니다 스타트업 창업한 친구를 보며 도전의식이 생겼다”고 했다. “그땐 몰랐죠. 사업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변수가 있고,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요. 겁이 없어서 창업한 게 맞습니다.”


아이템은 척추 관련 의료기기로 잡았다. 영업을 위해 드나들던 병원에서 봤던 청소년 척추 환자들의 우울한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척추측만증 교정기를 개발한 것은 아니다. “3D프린터로 척추보호 복대를 만들었죠. 하지만 생산원가가 높아 접었습니다. 대신 척추측만증 쪽에 집중해보기로 했죠.”

출처: 밸류앤드트러스트 제공
밸류앤드트러스트의 척추측만증 교정기 스파이나믹.
출처: 밸류앤드트러스트 제공
스파이나믹 교정 효과.

그는 2016년 2월 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척추측만증 교정기 개발에 착수했다. 주안점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갑옷 같은 기존 제품을 착용하기 편한 천 재질로 바꾸는 것이었다. 노 대표는 “기존 교정기는 딱딱해 착용하기도 불편하고, 위에 옷을 입어도 티가 나 성장기 아이들의 거부감이 컸다”며 “딱딱하게 척추를 교정해주는 부분과 천을 적절하게 융합해 환자들이 치료 효과를 보는 18시간 이상을 꾸준히 착용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했다.


그는 1년 넘게 제품을 만들어 2017년 4월 한 대학병원에서 효과를 검증했다. 딱딱한 갑옷 같은 교정기에 준하는 교정력이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2017년 11월에는 10억원의 투자도 받았다. 그해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스타트업 데모데이 ‘이스트 미츠 웨스트(East meets West)’에서 아시아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출처: jobsN
노경석 대표.

“제조기업에 머물 생각 없다”


노 대표는 한국과 미국, 유럽의 의료기기 허가를 취득해 2018년 10월 척추측만증 교정기 ‘스파이나믹’을 시장에 내놓았다. 기존 교정기는 환자의 몸에 석고로 본을 떠 교정기를 만드느라 제작기간이 2주 정도 걸리지만, 스파이나믹은 X레이로 환자의 척추 상태를 검사해 바로 제품을 받을 수 있다. 환자의 호전 상태에 따라 교정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 다이얼도 달았다. 가격은 기존 교정기 제품과 비슷한 수준. 노 대표는 “현재 출시된 척추측만증 교정기 중 붕대를 감아놓은 형태의 것이 있지만, 이는 혼자서는 착용이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며 “착용하기 쉽고 옷을 입었을 때도 티가 별로 나지 않는 교정기는 우리 것이 세계 최초”라고 했다.


반응은 뜨겁다. 그는 “교정기 착용으로 학교 생활에 자신감을 잃고 소극적이던 아이들이 우리 제품을 착용하고 다시 활기를 찾게 됐다”며 “학부모들이 감사를 전해올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예전엔 척추측만증 교정기를 착용해야 된다고 환자에게 말하면 눈물바다가 되곤 했는데, 우리 제품이 나온 이후에는 환자도 그렇게까지는 부담이 되지 않는지 울지는 않는다고 의사들이 이야기하더라고요.”

출처: jobsN
노경석 대표.

노 대표는 올해 사업을 본격 확장할 예정이다. 제품이 작년 말에 나와 작년 매출은 크지 않다. 하지만 올해는 국내 목표 매출액만 20억원이다. 국내 전국 대학병원과 미국, 유럽 등으로 판로를 확대할 예정이다. 그는 “내년엔 센서를 달아 교정 강도와 환자들의 착용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 할 수 있는 교정기를 출시할 예정”이라며 “이를 통해 환자 맞춤형 치료를 전달하는 디바이스로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성장기 아이들이 원인 모르게 걸리는 척추측만증을 제대로 관찰하고 솔루션을 제안하는 회사가 되고 싶습니다. 교정기만 만드는 제조기업에 머물 생각은 없습니다. 목표는 척추측만증을 이 세상에서 없애는 겁니다.”


포부가 당찼다.


글 jobsN 김성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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