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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노래하는, 국내 유일 수어 래퍼입니다

조회수 2021. 3. 22. 13: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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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이 랩을 한다고? 손짓으로 예술하는 수어 아티스트입니다
수어로 예술 활동하는 농인 아티스트 김지연씨
랩·뮤지컬·뮤직비디오 등 수어로 다양한 활동
올해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 농 축제에 초청받기도
수어와 농문화 알리고 싶어

“보는 내내 소름이 끼쳤다” “손을 사용하니 박진감이 더 느껴진다” “음성보다 더 큰 역동성이 있다”

출처: 유튜브 채널 '핸드스피크' 캡처
뮤직비디오 ‘누가 죄인인가’는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영웅’ 삽입곡을 수어(手語)로 재현한 영상이다.

작년 광복절에 수어 예술 단체인 ‘핸드스피크’가 공개한 뮤직비디오 ‘누가 죄인인가’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영웅’ 삽입곡을 수어(手語)로 재현한 영상이다. 수어는 청각장애인을 뜻하는 농인(聾人)이 사용하는 언어다. 2016년 한국수어언어법이 제정되면서 한국 수어는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법적 공용어가 됐다. 배우들의 손짓과 표정만으로도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다는 댓글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이 영상은 현재 조회 수 6만회를 넘었고, 댓글은 200개에 달한다.


이 수어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사람이 있다. 뮤직비디오에서 직접 판사 역할을 맡아 연기하기도 했다. 농인 아티스트 김지연(26)씨다. 그는 수어로 뮤지컬, 연극, 랩 등 다양한 수어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언어에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담긴다. 농인의 언어인 수어도 마찬가지다. ‘손으로 노래하는’ 국내 유일 수어 래퍼인 김지연씨는 손짓 하나하나에 다양한 감정을 담아낸다. 그와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출처: 핸드스피크 제공
농인 아티스트 김지연씨.

-자기소개해 주세요.


“농인의 문화예술 활동을 위한 소셜 벤처인 ‘핸드스피크’ 소속 아티스트 김지연입니다. 2018년 핸드스피크 창립 멤버로 핸디 랩(수어로 하는 랩), 뮤지컬 작품 연출 등을 하고 있어요.”


부모님이 모두 농인인 김지연씨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한국 수어를 모어로 익혔다. 유치원생 때 김씨도 청각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농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크게 한 적은 없었다.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과 오랜 기간 익숙하게 써온 수어 덕분이었다.


농 사회에서는 ‘청각장애인’과 ‘농인’이라는 개념을 구분한다. 관점의 차이다. 청각장애인은 병리학적 관점에서 본 말로 장애를 ‘고쳐야 할 치료대상’으로 본다. 농인은 문화적 관점에서 본 말이다. 장애를 환경이 규정하는 개념으로 본다. 다른 사람과 말할 일이 없는 환경에서는 청각 장애는 장애가 아닌 셈이다. 농 사회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비장애인을 청인(聽人)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청인은 한국어를 일상어로 쓰는 사람, 농인은 수어를 일상어로 쓰는 사람을 뜻한다. 농인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일 뿐이다. 

출처: 핸드스피크 제공
김지연씨는 어릴 때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서울예술종합학교에서 무용학을 전공한 김지연씨는 어릴 때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전문적으로 춤을 배우기 시작해 힙합 댄서로 활동했다. 2016년 일본 아시아농댄스페스티벌(ASIA DEAF DANCE PRe FESTIVAL) 초청 공연 등 다양한 무대에 올랐다. 댄서에서 수어 아티스트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한 건 2017년 때부터다.


“댄스 공연을 할 때 제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에 많은 분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반면 농인들의 반응은 달랐어요. 제 댄스 공연이 비장애인의 공연과 다를 게 없었던 거죠. 농인들에게는 제 공연이 ‘농 문화’를 표현할 만한 특색이 없다고 느껴졌던 거에요. 어떻게 하면 농 문화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아티스트로서 나만의 색깔을 더 드러내고 싶었고, 다양한 일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핸디 랩, 뮤지컬 작품 연출 일 등을 시작했습니다.”

출처: 핸드스피크 제공
작년 창작수어연극 '사라지는사람들' 세종문화회관 공연사진.
출처: 유튜브 영상 캡처
래퍼 프라이머리의 ‘물음표’를 핸디 랩으로 선보여 화제였다.

김지연씨는 2017년 극단 ‘난파’의 창작수어뮤지컬인 ‘난파클럽’을 연출하면서 본격적으로 뮤지컬 연출 일을 시작했다. 또 핸드스피크가 기획·제작한 창작수어뮤지컬 ‘미세먼지’를 연출했다. 직접 무대에 올라 연기도 했다. 2019년 한국장애인문화협회가 주관하는 제14회 나눔연극제에서 창작수어뮤지컬 ‘미세먼지’로 대상과 연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씨는 또 래퍼 프라이머리의 ‘물음표’, 가수 피노다인의 ‘손만 잡고 잘게’ 등을 핸디 랩으로 선보여 화제였다. 최근에는 국내 최초의 수어 뮤직비디오인 ‘어흥’을 직접 작사하기도 했다. 

출처: 핸드스피크 제공
농인 아티스트 김지연씨.

-작품을 무대에 세우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또 얼마나 연습하는지 궁금합니다.


“뮤지컬이나 연극의 경우 기획·제작부터 무대에 오르기까지 약 10개월 정도 걸립니다. 대본을 수어로 번역하고 감수하는 과정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연습을 합니다. 평일은 3시간, 주말은 6시간 이상합니다. 핸디 랩의 경우 노래 한 곡을 소화하려면 보통 3개월 이상 연습합니다. 오랜 시간 연습을 거쳐 무대 위에 섭니다.”


-핸디 랩 등 수어로 공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수어라는 게 시각적인 언어라서 표정과 손동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크고 정확하게 전달해야 해요. 청인이 발성과 발음 연습을 또렷하게 하는 것처럼요.”


-일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청인 사회에서 일할 때 아직은 어렵고 불편한 점이 많아요. 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 아직 수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지만, 보이지 않는 언어 차별이 있어요. 이러한 어려움을 원동력 삼아 수어와 농 문화를 더 열심히 알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이라는 편견 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나요.


“아티스트인데, 아직은 ‘예술’보다는 ‘장애’에 더 초점을 맞춰서 보시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어요. 음성 예술, 음성 아티스트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장애 아티스트가 아닌 제 모어인 수어로 예술을 하는 ‘아티스트’입니다.”

출처: 핸드스피크 제공
농인 아티스트 김지연씨.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고 뿌듯하실 때는 언제였나요.


“함께하는 단원들과 열심히 연습하고 공연을 마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그리고 공연으로 인해 사회의 인식 개선에 도움을 줬다고 느끼면 더 기쁩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활발하게 활동 중인 래퍼들과 함께 새롭고 다양한 콜래보레이션 공연을 하고 싶어요. 또 2021년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 농 축제(Fastival Clin d’Oeil 2021)에 핸드스피크가 초청받으면서 올해 대한민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동안 국내에서 공연한 작품들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새로운 장르의 예술을 하는 만큼 진정성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자 합니다.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진심으로 응원해요. 언젠가 만나게 되면 즐거운 예술 문화를 공유하고 싶어요. 올해도 다양한 활동에 많은 기대와 관심을 두시면 좋겠어요.”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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