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917이 남긴 다섯 가지 상징적 디자인 유산

조회수 2020. 12. 17.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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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 '핑크 피그'를 비롯한 색다른 꾸밈새의 경주차들

올해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인해 취소된 행사가 너무나 많았다. 자동차 쪽도 마찬가지였다. 12월에 마지막으로 열릴 예정이었던 서울오토살롱도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내년으로 연기되었다. 그럼에도 ‘2020 전남모터페스티벌’이 올해 마지막 자동차 행사로 열려, 자동차 애호가들에게 가뭄의 단비가 되어 주었다. 비록 무관중 행사로 개최되었지만, 전국에서 모인 다채로운 튜닝 카와 드레스업한 자동차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기에는 방해가 되지 않았다. 

시선을 끄는 여러 모델 중에는 분홍색 포르쉐 911이 있었다. 차체의 점선 안에 돼지고기 부위를 나타내는 단어를 보니 1970년에 등장한 포르쉐 917 '핑크 피그' 버전을 오마주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포르쉐 917이 이 모터쇼에 참가했다면 1960년대에 제작된 차라고 믿는 사람이 있었을까?  

917은 르망 경주차 뿐만 아니라 상징적 색의 조합 그리고 독특한 데칼 작업을 한 모델의 아이덴티티를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모터스포츠 팬이 아니라 해도 머릿속에 각인될 만큼 충분한 아름다움을 뽐냈다. 모터스포츠에서 가장 성공적인 머신이라 불리는 917 가운데 다섯 개의 상징적 모델이 보여준 다양한 모습과 이채로운 스타일을 되돌아보려 한다.

1968년에 발표된 국제자동차연맹(FIA)의 새로운 규정에 따라, 917은 양산형 스포츠카로 분류되어 25대 이상을 판매해야 경주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FIA 기술위원들에게 기술적 검사까지 받아 통과해야 하는 것도 난관이었다. 당시 포르쉐의 재정은 917의 개발비용은 감당할 수 없었다. 참고로 그 당시 917의 값은 911의 10대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끈질긴 설득과 폭스바겐의 지원으로 포르쉐 관계자들은 이 새로운 모델 개발에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제작된 25대는 차체를 단순한 흰색 페인트로 칠했다. 하지만 첫 번째로 생산한 917-001은 특별히 녹색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917은 데뷔 후 출전한 첫해 대회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이듬해인 1970년에는 한스 헤르만(Hans Herrmann)과 리처드 앳우드(Richard Attwood) 선수의 눈부신 활약으로 르망에서 343 랩을 완주한 후 승리를 거두었다. 917-001은 제네바 모터쇼 전시와 경주 규정에 맞춰 급히 제작된 모델이었지만 역사적 자동차의 탄생을 알리는 녹색 신호탄 역할을 했다. 

르망 24시간 경주를 위해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시속 400km 벽을 깰 모델을 프랑스 디자인 회사에 의뢰했다. 전문가들은 917K와 917LH의 최고의 공기역학적 특성을 혼합하여 차폭이 넓은 917/20을 디자인했다. 포르쉐의 디자인 책임자였던 아나톨 라핀(Anatole Lapine)은 긴 몸통, 뭉툭한 얼굴, 넓은 엉덩이의 917/20을 보고 '먹이를 기다리는 살진 돼지 같다'며 농담을 했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돼지의 피부색을 연상케 하는 핑크색으로 칠하고 정육점에서 돼지 부위를 구분하는 점선과 돼지의 살을 나타내는 단어를 표시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분홍 돼지'라는 별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 디자인의 917/20은 1971년 르망 레이스에서 관중들이 가장 좋아하는 모델이었다. 이 차는 예선에서 가장 빨랐고 브레이크 고장으로 리타이어하기 전까지 5위를 기록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분홍 돼지' 리버리를 한 포르쉐 911 RSR이 르망 24시간 경주에서 우승컵을 거머쥐며 917/20의 헤리티지를 이어나갔다.

마티니(Martini)는 이탈리아 주류 회사로 포르쉐의 후원사이기도 했다. 마티니 레이싱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한 경주차들은 파란색, 하늘색 그리고 빨간 줄무늬가 상징이었다. 일반적으로 바탕은 희색이지만 다른 색을 쓴 모델도 있었다. 1969년 르망 24시간 경주에 등장한 917의 모델명 뒤에 붙은 LH라는 표현은 ‘꼬리가 긴’이란 의미의 랑헤크(Langheck)의 약자로 통상적인 모델보다 리어 오버행이 490mm 길게 제작되었다. 

이는 속도와 공기역학적 기술을 겨루는 라 사르트 서킷에서 6km를 차지하는 뮬잔 스트레이트(Mulsanne Straight)에서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도록 개발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포디엄에 오른 마티니 레이싱 버전의 917은 없었다. 그런데도 이 모델은 르망 24시 경주에서 기록적인 평균 속도와 평균속도 시속 312km를 넘은 첫 경주차였다.

걸프 오일(Gulf Oil)의 상징색인 하늘색과 주황색은 모터스포츠 팬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모터스포츠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페드로 로드리게즈(Pedro Rodriguez)와 조 시퍼트(Jo Siffert)는 걸프 포르쉐 917(Gulf Porsche 917)로 브랜드 해치, 르망, 스파 프랑코샹, 뉘르부르크링 그리고 데이토나 서킷 등에서 펼쳐진 여러 대회에서 활약했고 전설이 되었다. 

또한 1971년 스티브 맥퀸이 만든 레이싱 영화 르망(Le Mans)은 걸프 포르쉐 917에게 상징적인 위상을 부여하기 충분한 것이었다.

이 스타일의 917은 포르쉐에게 르망 24시간 경주 첫 번째 종합 우승을 가져다준 모델이었다. 또한 917의 12기통 4.5L 엔진 그리고 최고출력 580마력이란 새로운 기준을 세웠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세기의 가장 인상적인 스포츠카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잘츠부르크를 상징하는 빨간색과 흰색은 당시 포르쉐의 팩토리 레이싱 팀이었던 포르쉐 잘츠부르크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국기를 나타내기도 했다. 1970년에 비와 안개 등 악천후 속에서 열린 르망 24시간 경주에서 완주한 2명의 레이서가 바로 이 붉은색 23번 포르쉐 917K를 몰았다.

이렇듯 하나의 색의 조합 안에 역사가 담겨 있기도 하고 자동차의 성격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포르쉐는 917을 통해 증명해 보였다. 비슷하게 생긴 외형에서 다양한 스타일과 헤리티지를 만들어낸 모델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독특하고 참신한 색을 입힌 모델을 다섯 개만 선정해 보았다. 더 다양하고 상징적인 색과 데칼을 입힌 경주차가 탄생하기를 글을 쓰는 지금도 고대하고 있다.

글 윤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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