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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드라이빙 메모리 (2) - 기아 프라이드

조회수 2021. 2. 15. 08: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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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오너드라이빙 서브컴팩트

선택하기까지

우리나라의 1980년대 후반은 정치적인 부분을 제외하곤 활기 넘치는 시대였다. 경제적으로도 활기가 넘쳤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잇달아 개최하며 국민적 자존감도 한껏 높았다. 자동차 역시 내수 시장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선진 자동차 시장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당시 20대 후반의 사회초년생이었던 내가 선택한 첫 새 차는 기아 프라이드였다. 그간 현대 포니 1, 포니 2 픽업, 혼다 시빅, 폭스바겐 비틀과 골프, 현대 스텔라와 엑셀 스포티 등 여러 차를 지조 없이 타고 다녔지만, 새 차를 맞은 것은 프라이드가 처음이었다. 현대에선 포니 엑셀이라는 국제 수준의 체구와 장비를 자랑하는 컴팩트카로 시장을 휩쓸고 있었고, 대우에서는 독일 오펠의 카데트를 바탕으로 한 르망이 나와 경쟁하던 때였다.

내가 프라이드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프라이드는 쌌다. 체급도 포니 엑셀이나 르망보다 한 급 낮았고 크기 역시 한 급 작았다. 외관만 보더라도 3도어 모델밖에 없었고(나중에 길이를 5cm 늘인 5도어, 3박스 세단형 베타와 왜건 모델이 더해졌지만, 데뷔 초기에는 3도어 모델뿐이었다), 편의 장비는 포니 엑셀이나 르망보다 많이 모자랐다. 요즘 말로 ‘모양 빠지는’ 차였다. 

당시는 자동차 보급이 요즘의 1/8 수준이어서 아무나 내 차를 마련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심정으로 크고 멋진 차를 선택하는 경향이 높았다. 프라이드는 데뷔부터 큰 인기를 끌 자질이 모자란 차였다.

당연히 필자가 프라이드를 선택할 때에는 많은 반대가 있었다. '이왕 사는 거 돈 조금 더 보태서 엑셀을 사라'거나 '르망이 멋지게 나왔던데...'라는 얘기에 귀에서 피가 나올 정도였다. 차 이름은 프라이드였지만 그건 기아의 생각이었고, 구매자 입장에서는 프라이드를 갖기 힘든 차였다.

필자의 선택은 69마력을 내는 1.3 수동 모델이었다. 차체 크기는 길이 3,565mm에 너비 1,605mm, 높이 1,460mm 그리고 휠베이스가 2,295mm였다. 구매 대상이던 포니 엑셀이나 르망보다 한참 작은 체구였다. 프라이드는 이들보다 아래인 서브컴팩트급 혹은 리터카급이었다.

‘작긴 하지만 1세대 골프와 별 차이 없는 크기에 5cm나 더 높아 실내는 더 넓은 걸?!!’이라며 애써 위안으로 삼았다. 짧은 휠베이스도 당시 930 보디의 포르쉐 911보다는 길었고 휠베이스가 짧은 만큼 조종성이 좋을 것이라 애써 기대도 걸었다.

아무리 싼 찻값에 타협했더라도 그나마 '프라이드'를 찾고자 5단 수동변속기에 에어컨이 달리고 계기반에는 타코미터가 자리잡고 디지털시계와 뒤창 와이퍼에 165/70R12 광폭(?)타이어와 알로이 휠을 갖춘 최고급 트림 DM을 골랐다. 당시 프라이드로는 그야말로 '톱 그레이드'에 '풀 옵션'이었다.

도로에서의 변신

처음 3,000km를 달릴 때까진 정말 살살 초보운전자처럼 몰았다. 그리고 적산 거리계가 3,000이라는 숫자를 넘기고 나서야 액셀 페달을 한껏 밟아 타코미터 바늘이 3,000rpm을 넘는 영역까지 몰아붙였다.

그 순간부터 필자의 감정이 달라졌다. 경쟁 모델 아니 바로 윗급 모델인 포니 엑셀(87마력)이나 르망(88마력)보다 출력이 한참 떨어지는 69마력짜리 프라이드의 반응은 대단했다. 프라이드를 선택하기까지 그리고 길들이기 주행을 하는 중에도 숱하게 '차라리 르망이나 포니 엑셀을 사지...' 라는 얘기를 꿀 먹은 벙어리처럼 들어야만 했던 서러운 시간이 끝나게 되었다.

왜? 프라이드의 달리기는 다른 국산 소형차와는 수준이 달랐다. 작은 체구와 모자란 장비 덕에 한껏 가벼워진 프라이드의 반응은 포니 엑셀이나 르망보다 나았다. 오히려 작은 체구와 짧은 휠베이스로 훨씬 경쾌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시각적으로는 높은 차체가 코너링 때 불안할 법도 한데 오히려 더 안정적인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게다가 5단 수동변속기의 이상적인 기어비는 엔진 회전과 어우러져 응답성이 빼어났다. 당시 국산차에서 달리기의 즐거움을 주었던 차는 거의 없었다. 

일천했던 당시 필자의 개인적 경험에서는 포니 2 픽업 정도가 그런 국산차였다. '5-Speed(5단)'란 배지를 자랑스레 달던 시절, 5단 수동변속기를 가진 포니 엑셀이나 르망은 프라이드와는 달랐다. 정확히 말해 프라이드가 가장 좋았다. 미쓰비시의 그늘에서 막 독립한 현대는 자랑스러웠지만 기술적 완성도까지는 이루지 못하던 시절이었고 어떤 여유도 없이 남(오펠)이 설계한 차를 만들던 대우 역시 기술적 완성도는 프라이드에 못 미쳤다.

고속도로에서 포니 엑셀을 몰면서 5단으로 기어를 올리면 의문이 생겼다. 스스로 ‘5단에 넣은 것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4단과 5단의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타코미터의 바늘이 찔끔 내려가고 엔진음도 거의 변화가 없었다. 르망을 고속도로에서 몰아보면 ‘확실히 고속주행에 어울리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시내만 들어서면 3단 이상 변속할 기회가 거의 없을 만큼 너무 벌어진 기어비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프라이드는 변속이 즐거웠다. 69마력이란 검소한 수치의 엔진 출력이지만 어느 기어 단수에서도 그 출력을 100% 가까이 끌어낼 수 있는 차였다. 게다가 코너링에서의 안정감은 국산 소형차보다는 오히려 골프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차를 몰면서 비로소 내 차에 대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었다.

나만의 프라이드 추억

프라이드와 함께했던 필자의 20대 후반은 참 즐거웠다. 비록 젊다는 것 외에는 가진 것이 별로 없었지만, 프라이드처럼 모자란 듯한 조건 속에서도 그 상황을 100% 즐길 수 있었다. 장거리 여행을 가더라도 여느 국산차 못지않은 편안함에 15km/L를 가볍게 넘는 좋은 연비로 가벼운 지갑을 배려해주었고 와인딩을 탈 때는 피곤함보다 즐거움이 도드라졌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프라이드는 필자의 인생 반려자와 함께 했던 시기에 듬직한 조력자였다.

필자는 가끔 제자들이 첫차 선택을 물을 때 이렇게 대답해 준다. '그 차의 능력을 70% 이상 끌어낼 수 있는 차를 고르라'고.... 이렇게 얘기하는 근거는 기억 속 프라이드의 검소한 활기와 탄탄한 듬직함이다. 꼰대 소리인 줄은 알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이런 느낌을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어 아쉽다. 프라이드가 가지고 있던 그런 생생함은 1980년대로 끝났는지도 모른다. 프라이드의 그 날것 느낌은 안전, 환경, 편의성 그리고 경제성이라는 규격에 맞추어진 ‘요즘 차’들에서는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요즘 차들이 너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글 한장현 (자동차 칼럼니스트,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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