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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창틀을 되살리다

조회수 2020. 11. 13. 12: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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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카메라 수리 장인 이기훈

필름 카메라 수리 장인 이기훈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고 스마트폰이 대세가 된 오늘날, 사진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소위 인증샷이라 불리며 자신의 행적을 기록한 사진이 SNS에 즐비하며, 스마트폰 갤러리에 저장된 사진을 통해 그 사람이 경험했던 소중한 순간의 기억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설령 제 아무리 정서 교류에 에누리가 없는 이라 할 지라도 메모의 대용품으로 사진을 활용하고 있을 것이다. 0과 1의 나열로 구성되는 디지털 데이터의 특성상, 그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그저 셔터를 누른다는 행위만으로 우리 눈에 비친 그것을 아주 편리하게 보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진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잔뜩 성난 하늘이 장대비를 뿌려대던 8월의 어느 오후, 우리는 충무로의 카메라 거리를 찾았다. 현대식 빌딩과 낡은 벽돌로 구성된 건축물이 나란히 서 있어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은 한때 수많은 카메라인이 찾던 성지였다. 충무로가 충무로라 불리기도 전인 1910년, 조선 최초의 영화관인 ‘경성고등연예관’이 들어서면서 활성화되기 시작한 영화 시장은 충무로 일대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그 결과 해방 후에도 충무로 주변은 늘 영화사 사무실로 붐볐고, 현재까지도 한국의 할리우드라 불리며 의례히 한국 영화계를 상징하는 명칭으로 쓰이고 있다.


필름을 교체할 필요도 없고, 번거롭게 인화하지 않아도 손쉽게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게 된 오늘날, 사진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세월 속으로 사라진 것들이 다시금 주목받으며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충무로 거리를 지키며 수많은 필름 카메라에게 새로운 심장을 이식해준 어느 장인의 소탈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안녕하세요. 이기훈 장인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기훈입니다. 달리 소개랄 게 있나, 그냥 오랫동안 카메라 수리를 해온 사람이지요. 같은 자리에서 꾸준히 일 하다 보니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주는데 고마울 따름입니다.


충무로에서는 얼마나 계셨어요?

PENTAX A/S센터에서 근무하다 독립하여 이곳에 사무 실을 차린지는 33년 정도. 필름 카메라가 보급되기도 전에 이 일을 시작해서 필름 카메라의 황금기와 황혼기까지 전부 지켜봤지요.


카메라 수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어릴 적인 1970년대는 다들 먹고살기가 힘들었어요.

지금처럼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지 않았고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만큼 여유롭지도 않았죠. 뭐라도 좋으니 당장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게 우선이었어요. 그러니 저도 중학교를 졸업하곤 생계를 위해 공장을 다녔지요. 그러던 어느 날 지인에게 일자리를 소개받게 돼요. 먹여주고 재워주고 기술까지 가르쳐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나. 그렇게 카메라 수리를 시작하게 된 거죠.

이곳에서는 어떤 카메라를 수리받을 수 있나요?

기계식 수동 필름 카메라와 자동 필름 카메라는 물론이고 디지털카메라까지 전부 수리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모든 걸 다 잘하는 건 아니고, 수리가 자주 들어와 손에 익은 카메라일수록 숙달되다 보니 PENTAX나 CONTAX 같은 중형 카메라가 전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 수리는 부품 수급이 어려워 고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사실 기계식 카메라도 워낙 오래전에 단종된 기종이라 부품을 구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부품용으로 쓸 스페어 바디를 챙겨두곤 합니다. 동일하거나 호환이 가능한 모델이라면 거기서 적출해서 이식하는 것이죠. 정 안되면 부품을 직접 깎아서 수리하는 방법도 있어요. 반면 자동카메라는 문제가 발생한 칩이나 회로를 구하지 못하면 수리가 불가 능합니다. 그건 우리가 어떻게 만들 수가 없으니 말이죠. 호환이라도 되면 다행인데, 요즘 카메라 들은 워낙에 빨리빨리 발전하다 보니 정교한 부품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하나만 교체하면 살릴 수 있는 것도 부품을 구하지 못해서 수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이곳을 자주 내원하는 모델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간단해요, 많이 팔린 거. 많이 팔렸다면 그만큼 인지도가 좋다는 의미니까 그런 카메라들이 자주 찾아옵니다. 가끔 전화로 장황하게 물어보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도 이야기만 들어선 정확히 알 수 없어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듯이 우리도 똑같다고 보면 됩니다.


레트로 열풍에 힘입어 필름 카메라가 요즘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수리 점을 찾아오는 방문자의 수에서 유행을 체감하고 계신가요?

요즘엔 평소보다 더 북적거리는 게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요. 좁은 가게가 가득 찰 때면 옛날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긴 한데 어차피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어요. 보통 두, 세대 많아봐야 네 대지, 그 이상은 처리를 못해요. 오래된 모델이라면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하고 말이죠.


그렇다면 제한된 공급과 한정된 인원이 찾아오는데서 겪는 어려움은 없으세요?

어려울게 뭐 있겠어요, 한 달 일해서 용돈벌이나 하면 그만이죠. 큰 욕심을 가지면 이일을 오래 못해요. 물론 이직을 생각해 본 적도 있죠. 카메라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카메라를 팔아볼까도 싶었는데 세일즈엔 적성이 없더라고. 세일즈를 잘하려면 어느 정도 허풍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나랑은 안 맞아요. 손으로 열어서 눈으로 고장을 확인하고 수리를 마친 뒤 마지막 나사까지 직접 조여야 마음이 놓이다 보니.

장인의 추억이 담긴 PENTAX 67.

장인님이 생각하시는 필름 카메라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우선은 색감이 다르죠. 디지털은 뭔가를 그려놓은 느낌이라면 필름은 원판 그 자체를 담아놓은 느낌이랄까? 그런 걸 젊은 세대는 감성이라고 부르는 거 같아요. 저마다 셔터음이 모두 달라서 모델마다 개성이 있지요. 또 레버를 돌리는 손맛도 남다르고요. 요즘은 시대가 워낙 좋아져서 스마트폰 하나면 못하는 일이 없게 됐는데, 그래도 역시 제대로 촬영하려면 카메라로 찍어야 한다고 봐요. 특히나 사진의 깊은 맛을 느끼려면 필름 카메라로 찍어봐야죠. 인화하기 전까지 결과물을 알 수 없는데서 오는 설렘과 촬영하고 현상해서 인화하는 그런 번거로운 작업들까지 포함해서 사진 촬영이 갖는 매력이 아니겠어요?


필름 카메라에 입문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필름 카메라는 촬영 후에 필름을 넘기기 위해 레버를 감잖아요. 이게 슬슬 이상이 생기면 레버의 감도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찌나 힘이 좋은지 레버가 고장 날 때까지 돌려서 가져와요. 사전에 가져오면 쉽게 해결할 문제도 완전히 망가뜨려서 가져오니 좀 안타까울 때도 있어요. 카메라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조금만 더 신경 써줬으면 좋겠어요.

출처: 레전드매거진 202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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