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주유? 익명 계좌?.. 정치자금법 '3개월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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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데이터랩 마지막회:) 데이터정책제안
정치자금 횡령, 3개월만 안 들키면 그만
295만원 어치 '집기'가 궁금하다
식당에서 주유비 쓴 유승민 의원
오직 석달, 지역 선관위 가야만 열람?
'법대로'에 결국 막힌 국회데이터랩
# 295만원 어치 '집기'가 궁금하다
뉴스래빗은 2018년 7월 1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보공개시스템을 통해 한 차례 정보 공개를 청구했습니다.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의 정치자금 지출 내역 중 미심쩍은 항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윤한홍 의원이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에 기재한 항목입니다. '집기'를 사는데 295만5000원을 썼습니다. 2016년 11월 23일 성씨 성을 가진 익명의 사업자(번호 999-99-99999) 계좌로 대금을 입금했다는 사실 외에 알 수 있는 내용이 없습니다.
그게 어쨌다는거죠? 윤 의원이 정치자금 295만원을 어디에 썼는지 알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제1조(목적)
이 법은 정치자금의 적정한 제공을 보장하고 그 수입과 지출내역을 공개하여 투명성을 확보하며 정치자금과 관련한 부정을 방지함으로써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 왜 하필 윤한홍 의원일까요?
윤 의원을 특별히 지목해 취재한 건 아닙니다. 그는 뉴스래빗이 선정한 20대(2016년 5월 30일~ 2018년 6월 4일) 국회 본회의·상임위회의 결석 2관왕 12명 중 한 명입니다. 2018년 6월 8일 뉴스래빗의 기사를 기준으로 본회의 결석률 22.62%, 상임위회의 결석률 31.58%, 종합결석률 26.88%를 기록해 결석 2관왕 10위에 올랐죠.
뉴스래빗은 본회의-상임위 결석 2관왕에 선정된 12명의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를 모두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법안을 심사하는 본회의-상임위를 무단결석한 '입법기관' 국회의원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국민의 세금으로 준 '정치자금' 돈을 썼는지 들여다보려는 의도였습니다.
뉴스래빗은 선관위에 12명에 대한 2016~2017년 2년 치 정치자금 사용내역 정보공개를 청구했습니다. 그리고 10일 뒤 1491매에 달하는 정치자금 지출 회계보고서를 받았죠. (역시나) 각 의원실이 작성해 선관위에 제출한 사용내역 문서를 스캔한 PDF파일이었습니다. 디지털 데이터베이스(DB)화가 아주 까다로운 '나쁜' 파일 형식이죠.
# 식당에서 주유비 쓴 유승민 의원
뉴스래빗은 DB화를 진행하면서 1491매 한장 한장 눈으로 손으로 검수했습니다. 지출 내역이 비상식적이고 불투명한 지출 내역 22건을 추출해냈죠.
그 중 하나가 윤 의원이 '집기' 대금 295만5000원을 익명의 계좌로 현금 입금한 건이었습니다. 어떤 집기인지도 안나오고, 누구의 계좌인지도 알 수 없는 정치자금입니다. 게다가 사업자번호는 999-99-99999,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윤 의원뿐만이 아닙니다. 식당에서 주유비를 결제했다고 기록한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학회 회비를 정치자금으로 지급한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 군청에서 세대주명단을 5만7450원을 주고 구입한 홍문표 자유한국당 의원 등 미심쩍은 항목을 기재한 국회의원이 많았습니다.
여기까지도 고된 수작업이었습니다. 뉴스래빗은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 및 국회 관계자를 상대로 해당 22건 사용내역의 문제점을 취재했습니다. 돌아온 답은 '영수증까지 챙겨봐야 알 수 있다' 였습니다.
결국 뉴스래빗은 의원실이 지출내역서를 선관위에 제출하면서 함께 낸 적격증빙자료 영수증을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하려 했습니다. 다만 의심스러운 22건 항목 중 우선 1건에 대한 적격 증빙 서류만 요청해보기로 했습니다. 한꺼번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가 또 수 백만원에 달하는 수수료 폭탄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범으로 정보공개 청구한 항목이 바로 윤 의원의 '집기' 지출입니다. 그럼 뉴스래빗은 윤 의원의 집기 지출 적격증빙 자료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실패였습니다.
# 정치자금 횡령, 3개월만 안 들키면 그만?
중앙선관위에 청구한 정보공개는 윤 의원의 지역구인 창원시 마산회원구 선거관리위원회에 할당됐습니다. 청구일로부터 13일이 지난 2018년 7월 23일, 처리 결과가 나왔죠
그 결과는 '비공개' 결정이었습니다. 정보를 공개해 줄 수 없다는 결정이었죠.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비공개 사유
법령상 비밀·비공개(제1호) 2016년 11월 23일 윤한홍 의원 후원회기부금 계정에서 지출한 '집기' 항목에 대한 적격 증빙 서류는 정치자금법 제42조(회계보고서 등의 열람 및 사본교부)제3항에 의해 비공개함
제42조(회계보고서 등의 열람 및 사본교부) 제3항
누구든지 회계보고서, 정치자금의 수입·지출내역과 제40조제4항의 규정에 의한 첨부서류( 제2호 및 제3호의 서류를 제외한다)에 대한 사본교부를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서면으로 신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사본교부에 필요한 비용은 그 사본교부를 신청한 자가 부담한다.
제40조 제4항 제2호 및 제3호
제2호: 제39조(영수증 그 밖의 증빙서류) 본문의 규정에 의한 영수증 그 밖의 증빙서류 사본
제3호: 정치자금을 수입·지출한 예금통장 사본
무슨 뜻인지 아시겠나요?
정치자금 지출의 영수증 및 증빙서류는 법적으로 비공개한다는 통보였습니다. 법이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 정치자금 지출내역 영수증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겁니다.
# 3개월의 마법, 꼭 가야만 열람?
뉴스래빗은 그럼 적격증빙 영수증 확인을 어떻게 하느냐고 선관위 담당자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돌아온 대답 안에 '3개월'이 있습니다.
오직 회계 보고가 끝난 뒤 3개월 동안만 직접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소에 방문해야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3개월이 지나면 영수증이나 증빙 서류를 '절대' 열람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가 가서 내놓으라고 해도 공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제42조 제2항
관할 선거관리위원회는 제40조제3항 및 제4항의 규정에 의하여 보고된 재산상황, 정치자금의 수입·지출내역 및 첨부서류를 그 사무소에 비치하고 제1항의 규정에 의한 공고일부터 3월간(이하 "열람기간"이라 한다) 누구든지 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윤 의원 영수증 항목은 2017년 회계보고에 포함돼 열람기간 3개월을 넘겼기 때문에 다시 공개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선관위와 중앙선관위 2곳 모두 재차 취재해봤지만 관계 법령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는 같은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만약 3개월이 지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뉴스래빗이 해당 의원의 영수증을 확인하려면 지역구가 있는 곳 선관위를 직접 방문해야 합니다. 윤 의원의 경우 창원시 마산회원구 선거관리위원회로 가서 열람 신청을 한 뒤 종이로 된 영수증을 보는 거죠.
21세기 정보기술(IT) 강국, 디지털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겠다는 대한민국의 후진적 현 주소입니다.
# '법대로'에 막힌 국회데이터랩
뉴스래빗 국회데이터랩은 결국 더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법대로 한다는 선관위 공무원들을 비난할 수만도 없습니다.
다만 윤한홍 의원이 295만5000원을 누구에게 보냈는지, 유승민 의원이 식당에서 주유비를 결제한 시간대는 언제인지, 홍문표 의원은 어떻게 개인정보인 세대주 명단을 군청에서 돈을 주고 살 수 있었는지, 김석기 의원은 정치자금으로 학회 회비를 낼 수 있었는지도 알 수 없게 됐습니다.
불투명한 정치자금법에 답답한 건 시민들입니다. 답답한 건 정치자금법뿐만이 아닙니다. 국회데이터랩 전반에 걸쳐 비상식적인 의정활동 결과를 보인 의원들이 많았습니다.
법안을 최종 가결하는 본회의 84회 중 절반이 넘는 46회에 무단결석한 서청원 의원, 2016년 6월 8일부터 2018년 8월 23일까지 807일 동안 대표 법안을 단 한 건도 발의하지 않은 김무성 의원 등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은 전혀 없습니다.
# 마지막편, 국회에 4가지 제안합니다
뉴스래빗은 2018년 4월 1일부터 2018년 8월 23일 까지 20대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의정활동 성적표를 #국회데이터랩 11차례 데이터저널리즘으로 공개했습니다.
1회: 20대 국회 '결석왕' 서청원…톱20 중 17명 자유한국당
2회: 20대 국회 '개미와 베짱이'…김무성 등 법안 대표발의 '0건'
3회: 20대 국회 입법 타율왕 톱20…박광온 등 개근왕-가결왕 '2관왕'
4회: 단 2.6%…5~8선 중진의원들 발의 안하나요?
5회: 20대 국회의원 재산 총 1조2547억…증권>건물>예금>토지 '재테크'
6회: [데이터 공유] 20대 국회 의원 286명 및 직원 37명 재산 내역 공유합니다
7회 : 또...자유한국당 국회 상임위 무단결석 1등, 출석은 꼴찌
8회 : 본회의-상임위 결석 2관왕 12명…서청원 한선교 조원진 김용태 김무성 톱5
9회 : [데이터 공유] 20대 역대 국회의원 302명 상임위 전원 출결 성적표
10회 : [데이터 정책제안] 선관위원장님, 113만원 꼭 받아야겠습니까?
11회 : [#국회데이터랩]식당 주유? 익명 계좌?…정치자금법 '3개월의 마법'
이번 데이터정책제안은 2018년 #국회데이터랩 시리즈의 마지막 편입니다.
11회 데이터저널리즘을 보도하면서 국회의원 민낯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려 노력하면 할수록, 국회와 국회의원은 다양한 제도적 장치와 시스템, 그리고 관련 기관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 보호 디테일은 너무나 꼼꼼하고, 세밀해서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그 존재를 알 수도 없는 일종의 '마법의 벽'과도 같았습니다.
'법대로'와 '보호 시스템'에 막힌 뉴스래빗의 #국회데이터랩은 여기서 멈춥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국회와 시민사회에 4가지 정책 변화를 제안합니다.
첫번째, 본회의와 상임위에 25% 이상 무단결석하는 의원을 퇴출하는 조항을 국회법에 명시하길 제안합니다.
두번째, 법안 발의가 저조한 의원에게 해당 정당이 경고나 징계를 내리고, 입법 활동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다양한 국회의원 윤리 교육를 시행하길 제안합니다.
세번째, 시민사회의 요구에 적격 증빙 서류를 공개하지 않는 모든 정치자금 지출을 국민 세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를 제안합니다.
네번째, 국회의원의 정치자금 사용현황을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실시간 공개할 것을 제안합니다.
p.s 그간 뉴스래빗 #국회데이터랩에 보내주신 많은 독자분들 응원 감사드립니다. 보다 나은 국회 관련 데이터저널리즘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뉴스를 실험하라 !.! 뉴스래빗
# 데이터 정책제안 ? 질 좋은 데이터저널리즘 콘텐츠는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뉴스래빗이 공공데이터 수집 및 정제, 분석 등 과정에서 겪은 문제점이나 애로사항을 바탕으로 데이터 관련 정책을 정부 및 지자체, 공기업 등 공공부문에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