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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하기 시작한 날

조회수 2019. 4. 25. 2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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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I N K P E T


너를 사랑하기 시작한 날​ 

육아와 육묘의 비교


30대 기혼 여성이 되고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단연 “아이 계획은 없니?” 일 것이다. 여기에 “네, 저희는 ‘딩크족’으로 살기로 했어요.”하고 솔직한 대답을 해봤자 믿는 사람은 적고 잔소리하는 사람만 많다. 그래서 요즘은 “저희 이미 딸이 있는데요? 은비가 있잖아 요.”하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을 대신하게 되었다.


실제로 육아와 육묘는 많은 점에서 닮았다. 은비와 처음 만났던 약 1년 반 전의 나를 떠올려보면, 은비가 하는 모든 행동이 신기한 동시에 늘 불안하고 조마조마했다. 부족함 없이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은 의욕으로 충만했지만,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우리에게 은비가 내려온 첫날


은비의 고향은 아산으로, 접힌 귀를 가진 아빠와 새침한 미묘 엄마 사이에서 첫째로 태어났다. 입양에 앞서 분양자분과 함께 동물병원에 건강 검진을 하러 갔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은비를 수컷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루이’라는 이름까지 지어뒀었다. 그런데 수의사 선생님께서 여자 아이 이름으로 다시 지어야겠다고 하시지 뭔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고양이는 성별 구분이 어려운 탓에 생긴 해프닝이었다. 분양 자분이 물었다. “고양이는 암컷과 수컷 성격이 아주 다른데 괜찮으시겠어요?” 당시 나는 수컷 고양이를 원하긴 했었다. 하지만 은비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한 순간 그런 생각은 저 멀리 사라진 후였다. 이미 사랑에 빠졌는걸요!


그 날의 은비는 그야말로 쥐면 부서질 듯, 불면 날아갈 듯했다. 어루만지는 것조차 조심 스러운 이 작은 생명을 조심스레 집으로 데려와 이동장째 침실 한구석에 내려놓았다. 낡은 셔츠 위에 웅크려 잠든 은비를 보며 나는 내 삶의 보물이 하나 더 생겼음을 알았다.​ 

서툴게 해나가는 모든 처음들


시간이 흘러 은비가 첫 예방접종을 하는 날이 왔다. 동물병원에 들어선 나의 표정에는 비장한 각오가 넘쳐흘렀다. 은비와 처음 한 달을 보낸 초보 엄마는 궁금한 것도 걱정되는 것도 너무나 많았다. “양치는 언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영양제는 뭘 먹이면 좋을까요?” “가끔 까각까각 소리를 내는데 무슨 뜻인가요?” 핸드폰 메모장을 빼곡히 채운 내 질문들에 수의사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고양이 처음 키우시나 봐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생각보다 잘 커요.”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았다! 은비의 바둥거림 앞에서 내가 예습했던 ‘고양이 발톱 깎기 동영상’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 음수량을 충분히 채워주지 못해 은비가 잠시 아프기도 했다. 교과서적인 육묘를 하겠다는 허황된 목표는 크고 작은 난관 앞에서 삐걱댔다.


그럴 때마다 한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새삼스레 가슴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은비를 만나서 행복해


육아와 육묘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은비와는 ‘말’로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 수 없는 불안은 오래된 커피 얼룩처럼 내 몸 어딘가에 항상 묻어 있다. 은비가 정말로 행복한지, 부족한 것은 없는지 말로 확인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은비를 만나서 새로운 행복을 배웠다. 처음 만났던 날에 느꼈던 놀라움과 기쁨을 지금도 매 순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은비에게 돌려주고 싶다.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엄마’의 사랑을 말이다.​


CREDIT​​​​

글·사진 박유하 

에디터 강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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