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또다시 방황 할 줄은 몰랐습니다.

조회수 2020. 11. 29. 23: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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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수의 비밀

29살이 될 때 까지 아홉수라는 말은 딱히 신경쓰지 않으면서 살아왔다. 그건 그저 남의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19살과 29살을 돌이켜보니 믿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아홉수가 무슨 뜻인지 찾아보니 숫자 연구가들에 의하면 뒤에 오는 ‘9’는 ‘시련, 일이 막힌다, 고비가 온다’는 뜻이라고 한다. 

엄친아의 전설

기원을 알 수 없는 엄친아의 전설이 나를 쫓아다니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였다. 어린 나이에 특출난 재능을 보인 그들은 영재였고 나에게 열등감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난 그들에 비해 모자랐고 부족했고 아는 것이 없었다.엄마는 내가 영재가 아님을 받아들였다. 놀이터와 뒷산을 자신있게 누비고 다녔던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그것이 유치하게 느껴졌다. 


엄마의 입에서 누구누구는 벌써 무엇을 했다더라, 그러니 너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주 큰 일이 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의 불안감은 나에게 전염되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큰 일이 날 것만 같았다. 학원을 다니며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꽤 행복했던 초등학교 시절은 가고 지옥의 중고등학생 시절이 시작됐다.  




모범생과 양아치

집 근처 남중으로 진학했다. 그 나이 때 남학생들은 남성 호르몬이 폭발하기 시작하여 매우 폭력적이고 과격했다. 처음으로 뉴스에 일진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등교할 때면 교실에선 늘 싸움이 일어났다. 점심 시간에도 싸움은 계속됐다. 계급은 모범생과 양아치로 나뉘었는데 사실 대부분은 이 둘 사이의 어중간한 부분에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부터 남 눈치를 많이 보기 시작했다. 혹여나 저 양아치가 나를 안 좋게 보고 이유 없이 괴롭히면 어떡하지, 이 모범생이랑 친해져서 공부도 하고 좋은 성적을 위한 정보도 얻어야 할텐데 어떻게 해야 내가 마음에 들 수 있을까. 학교가 끝나고 간 종합학원에선 나에겐 관심도 없는 여학생의 눈치를 보며 우리가 커플이 된 상상을 수없이 했다. 


19살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만, 그것만이 성공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꾸역꾸역 독서실과 학원을 다니며 버티고 있었다. 훌륭한 엄친아들은 특목고에 갔고 일반 남고에 진학한 나는 패배감을 느꼈다. 물론 일반 남고에도 엄친아들은 존재했고 그들은 내가 감히 꿈꿀 수도 없는 대학을 간다며 맹렬하게 공부했다. 


그렇게 19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난 작은 방황을 했다. 독서실에 있으면 이유 없이 외로움이 몰려왔다. 지금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분명한건 너무 외로워서 공부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당연히 높지도 않은 성적이 떨어졌다. 집에선 부모님의 원망을 들었다. 매일 부모님과 다투고 몰래 친구들을 만나며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영앤리치의 전설

결국 떨어진 성적을 주체하지 못하고 재수를 하여 대학에 진학했다. 재수한다며 학원비로 부모님의 등골을 빼먹은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꿈꿨다. 그런데 그땐 또 다른 전설이 눈 앞에 있었다. 바로 영앤리치들이었다. 난 운전면허만 겨우 땄는데 그들은 이미 대학교 1학년때부터 외제차를 타고 학교에 등교했다. 솔직히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때부터 20대 안에 무언가를 꼭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빨리 큰 돈을 벌어서 외제차 타고 클럽가서 제일 좋은 테이블에서 여자들과 놀자고 대학교 친구들과 수없이 얘기했다. 그 땐 그렇게 노는 게 최고로 멋있어 보였다. 무언가 이루어 놓은 것 없이 30살이 되면 인생의 루저가 될 것만 같았다.


29살

그렇다면 서른을 앞둔 29살. 난 내 희망대로 무언가를 이루어 놓았는가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방황만 있는대로 했다. 제대 후,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취업난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며 우울한 대학생활을 했다. 방학조차 취업준비를 하지 않으면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것만 같았다. 다들 그러니까 나도 그러지 않으면 큰 일 날 것만 같았다. 


내가 꿈꾸던 29살의 모습과 지금의 나는 매우 거리가 멀다. 어느 한 분야에서 자리를 잡지도 못했고 큰 돈을 벌지도 못했다. 앞서 언급했듯 방황만 했다. 이 회사, 저 회사, 이 일, 저 일. 그리고 또 다른 전설이 따라다닌다. 29살쯤 본인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의 인정을 받으며 나름 괜찮은 집안의 여자와 결혼을 준비 중인 그들. 어린 영재들이 커서 엄친아가 되고 그들이 대학에 가서 영앤리치가 되고 그들이 이제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 것일까. 


질투는 나의 힘

고맙게도 내 인생에 있어 항상 비교 대상이 있었다. 이 전설적인 존재들과 비슷해지려 애쓰는 것이 내 삶의 목표였다. 그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좌절하고 질투하며 힘을 냈었다. 그러나 결과는 10대의 끝자락과 20대의 끝자락에서 허무만 느낄 뿐이었다. 19살과 29살, 두 번을 고통받으니 더 이상은 이렇게 살고 싶지가 않아졌다. 거창한 이유는 없고 그냥 내가 힘들기 때문이다. 


훌륭한 전설들과 나를 비교할 힘을 다른데 써보기로 했다. 내 자신이 어제보다 1%씩 성장하는 것, 어제보다 1mm만 앞으로 나가는 것. 이것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물론 눈만 뜨면 전설들이 보이니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만, 이제 30대가 되기 때문에 다른데 쓸 힘이 딱히 남아 있지도 않는다. 그저 내 자신만 생각하고 어제 보다만 나아지자. 그러면 39살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39살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홉수? 그거 다 미신이야.

해당 글은 한국의 모든 29살과 공유하고자 서른을 앞둔 92년생 박현준님이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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