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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두 비극, 피츠제럴드와 페그 엔트위슬 이야기

조회수 2020. 5. 29.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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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의 깊고 어두운 그늘 속에서 생을 마감한 유명인들이 느꼈을 감정은 어땠을까?

※ 포스트 말론의 <Hollywood’s Bleeding>을 BGM으로 깔고 읽어봐 주세요.


산을 타고 있었어요. 그런데 할리우드 랜드 사인판 주변에서 여성용 신발이랑 재킷, 지갑을 발견했어요. 지갑 속엔 유서가 들어 있었고요. 아래를 내려다봤더니 거기에 시체가 있었어요.
1923년에 세워진 HOLLYWOODLAND 사인판의 모습.
이후 보수와 재설치 등을 거쳐 현재는 LAND가 빠지고 HOLLYWOOD만이 남았다.

1932년 9월 16일, 무비랜드 할리우드의 비극이 발생한다.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산의 정상부 Mount Lee 위에 설치된 HOLLYWOODLAND 사인판의 알파벳 ‘H’의 꼭대기에서 24살의 여성이 뛰어내려 즉사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페그 엔트위슬(Peg Entwistle)이었다. 영국 출신의 여배우였던 그녀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연기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브로드웨이에서의 성공과 할리우드에서의 인정은 별개의 문제였다. 


더욱이 그녀는 평소에 우울증도 앓고 있었고, 자신의 배우자 로버트 키스(Robert Keith)와는 학대를 이유로 이혼한 후였다. 로버트 키스는 결혼 사실을 숨기고 그녀와 결혼한 데다, 6살 난 아들까지 있었다고 한다.

출처: thefamouspeople.com

페그 엔트위슬은 그녀가 열연한 할리우드 영화 <Thirteen Women>의 개봉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녀가 사망하고 난 후,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의 이번 역할이 무비랜드 할리우드에 그녀를 각인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페그 엔트위슬은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자신을 맡겼고, 희망했다. 결과는 비참했다.

난 두려워요. 나는 겁쟁이예요.
전부 다 미안해요. 오래전에 일을 저질렀더라면, 쓸데없이 많은 고통은 덜 수 있었을 텐데요.

-페그 엔트위슬의 유서에서

1940년 12월 21일, 영화판에 뛰어들어 시나리오나 고쳐 쓰며 인생의 쓴맛을 보던 한물 간 소설가 피츠제럴드는 황갈색 슬랙스와 셔츠 위에 덧입은 스웨터, 타탄체크 재킷 차림으로 의사의 왕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공한 할리우드 칼럼니스트 Sheliah의 안락의자에 앉아 <프린스턴 동문 주간>을 읽고 있던 피츠제럴드에게 Sheilah는 허쉬 초콜릿 바 두 개를 건넸다. 단 걸 좋아하던 피츠제럴드는 초콜릿 바를 먹다가 갑자기 무언가에 걸린 듯 벌떡 일어섰다. 벽난로 선반을 움켜쥐었다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출처: history.com

인공호흡기가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사망한 후였다. 그의 나이 44세였다. 딸 스코티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정신병에 시달리던 부인 젤다에게 좋은 요양소를 보장하기 위해 할리우드에서 영화 시나리오 작업과 유작 『The Last Tycoon』 집필에 매진하던 피츠제럴드의 잡힐 듯 잡히지 않던 할리우드 드림은 그렇게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할리우드 시절, 피츠제럴드의 영화 시나리오를 읽은 까마득한 후배 작가 하나는 그의 글이 지나치게 ‘설교적’이라고 말했다. 가르치듯 글을 쓴다는 것이었다. 그는 액션보다는 설명에 집착하는 타고난 소설가였다. 시나리오 작가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할리우드 시절의 피츠제럴드를 우러르던 친구 한 명은 당시의 피츠제럴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피츠제럴드는 배관 공사 업무를 부여받은 위대한 조각가 같았다. 파이프를 연결하는 법을 모르니 물이 넘칠 수밖에.

피츠제럴드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자신을 맡겼고, 꿈꿨다. 결과는 처참했다.

드디어 LA를 떠나 유타로 갔어요. LA와 할리우드, 거긴 그냥 뭔가 이상한 기운이 있어요. 인생을 갉아먹는 뱀파이어들이 득시글거리고, 모든 장면이 그 자체로 개 같아요.

그러니까 거기서 나와 한 발 물러서서 모든 상황을 바라보면 그때 깨닫는 거죠. 할리우드는 썩어가고 있구나, 왜냐하면 그 모든 피 빨아먹는 뱀파이어
새끼들 때문에요. 아주 깜깜한 곳이죠.

– 래퍼 포스트 말론 Spotify 인터뷰(2019.9)

페그 엔트위슬이 죽고 나서 웬 여자 귀신이 밤마다 할리우드 사인판 주변을 어슬렁거렸다거나 HOLLYWOODLAND의 사인판이 13자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그 불길한 숫자를 죽이고자 ‘LAND’ 4자를 빼고 HOLLYWOOD만 남겨놓았다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스러운 이야기, 피츠제럴드가 사망하기 전 남아 있던 마지막 Loyalty Check(일종의 저작권료)가 하필이면 13.13달러였다는 이야기까지. 유명인의 죽음은 늘 무성한 추측과 과장된 교훈, 그리고 골치 아픈 의미 부여의 잔기술들을 끌고 온다.


나라고 예외일까? 옛날 옛적의 외국 여배우 페그 엔트위슬과 외국 작가 피츠제럴드의 저 안타까운 죽음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 많은 생각에 잠겨 본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자기의 아름다운 가치를 잃어버리고 화려함을 좇아가다가 삐끗한 그들의 치열한 고뇌와 방황은, 그래도 돌아보면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겠느냔 생각. 


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동네라고 일컬어지는 할리우드의 어둠은 정말이지 더욱 깊고 진할 테니 그들이 느꼈을 고통과 이 세상 가장 보통의 존재인 내가 느끼는 고통의 낙차는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것 같다는 부질없는 생각.


화려함의 깊고 어두운 그늘 속에서 생을 마감한 유명인들이 인생 최후에 느꼈을 감정은 어땠을까? 나는 오늘 많은 생각에 잠겨 본다.


원문: 스눕피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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