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동안 한국은 뭘 연구했을까

조회수 2021. 2. 25. 14: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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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과학자
팬데믹 1년

“그 짐승은 의사를 향해 달려오다가 또 다시 멈추어 섰고, 제자리에서 돌다가 마침내는 피를 토하며 쓰러져 버렸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한 장면이다. 폐렴 형태부터 신체의 말단 괴사까지 인간을 고통스럽게 희생시키는 페스트, 즉 흑사병은 수 세기 동안 유럽인을 괴롭혀왔다. 전염병은 사라지지 않는다. 작금의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은 유럽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동시에 강타했다. 초연결 사회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전염병은 이제 더 이상 어느 한 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이는 팬데믹을 극복하는 중요한 전제이기도 하다.

흑사병을 비롯해 콜레라, 신종플루 등의 병원균은 인류 문명의 발전에 맞춰 스스로 적응해왔다. 흑사병만 하더라도 2019년까지 세계 각지에서 국지적으로 발발했다. 2018년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도 아직까지 감염자가 보고된다. 단박에 모든 감염병을 종식시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전세계가 K-방역에 주목했다. 첫 단추는 신속한 진단이었다. 보건 당국은 집중적인 진단검사와 역학조사를 통해 감염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밑바탕에 ‘신속 진단’ 기술이 깔려 있다.

한국화학연구원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항원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다양한 항체들을 제작해 신속진단기술을 개발했다. 해당 기술은 임신진단키트처럼 항원-항체 결합반응을 활용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감염여부를 알 수 있게 했다. 기존의 유전자 증폭(PCR: polymerase chain reaction)진단검사와 함께 사용하면 현장에서 보다 빠르고 원활하게 감염을 진단할 수 있게 된다.

의료 현장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바이오 센서 기술도 개발됐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서 개발한 이 기술은 환자의 검체(가래, 타액)에 대한 별도의 전처리 과정 없이 바이오센서에 그대로 주입하는 것으로 감염 여부를 즉시 확인할 수 있게 개발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신속 진단 키트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특이하게 결합하는 우수 항체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한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는 코로나19 항체진단기기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항원을 공급하기도 했다.

나아가 현재 사용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진단 키트의 오류 판정을 줄일 수 있도록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자 표준물질도 개발됐다. 코로나19 검사는 진단 시약의 ‘프라이머’ 물질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이 DNA에 결합해 이를 증폭시키는 실시간 유전자 증폭(RT-PCR) 검사방식이다. 그런데 진단 키트마다 기준 값이 달라 양성 판정이 다르게 나오는 문제가 있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코로나19 유전체의 90%에 달하는 정보를 담은 표준물질을 개발함에 따라 진단키트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게 되었고, 향후에는 바이러스 변이 대응에도 활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되더라도 미래에 ‘코로나25’가 다시 나타나지 말란 법이 없다. 바이러스가 어떤 변이를 일으키는지, 항체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그 분석을 바탕으로 백신과 치료제를 연구하지 않으면 인류가 전염병의 극악한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워진다.

현재 접종이 시작된 백신은 mRNA 백신과 벡터 백신이다. 기존에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백신은 대부분 약하거나 비활성화된 세균을 우리 몸에 넣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mRNA백신은 COVID-19를 유발하는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학원 단백질을 만드는 mRNA를 몸 속에 넣는 방식이다. mRNA는 체내에서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든다. 면역 세포는 이에 대항해 중화항체를 조성한다. 이 중화항체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표면의 스파이크 단백질에 결합하는 항체다.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만들어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킨다. 반면 벡터 백신은 스파이크 단백질을 다른 바이러스에 집어넣어 우리 몸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스파이크 단백질이 우리 몸 속에 들어오면 면역체계가 작동해 항체가 만들어진다. 이밖에도 불활화 백신, 재조합 단백질 백신, 유전자 백신, 등 다양한 유형의 백신들이 개발 단계에 들어갔다.

국내에서도 민관 합동으로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코로나 19 백신 후보물질을 개발했다. 개발된 재조합 단백질 백신기술은 다른 백신 형태에 비해 높은 안전성을 갖췄다. DNA나 mRNA백신과 달리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 백신으로 사용되고 있다. 폐렴구균백신, 구제역 백신 등이 대표적이다.


연구진은 설치류 등 동물실험을 통해 개발된 물질이 중화항체를 형성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향후 코로나19 백신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코로나19 후보물질 효능을 확인할 수 있는 영장류 감염 모델을 개발했다. 인체와 유사성을 가진 동물 실험이자 전임상단계인 영장류 감염 모델 실험에서 일부 후보물질의 항바이러스 효능이 확인됐다.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 등 일부 국가에서는 현재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백신 개발이 이처럼 빨리 이뤄진 배경에 ‘오픈 엑세스’가 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온라인에서 바이러스 게놈 정보를 공유한다. 감염병 관련 학술 논문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19의 검출, 억제, 치료를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댔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관련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연구 데이터를 공유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전 세계에 흩어진 코로나19 연구 데이터 및 뉴스들을 신속히 수집해 국내 연구자들에게 제공하는 포털을 오픈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코로나19 관련 과학기술 정보‧데이터 서비스 제공 코너를 신설해 운영했다. 또한 미 백악관이 주도하는 코로나19 HPC 컨소시엄에 가입해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 자원을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공유했다. 이는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 가속화에 기여했다. 변종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급격히 확산하는 만큼 글로벌 과학자들의 주요 정보 공유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한편, 감염병 확산을 방지하는 노력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역량이다. AI로 다중이용 시설에서 코로나 감염위험도를 예측하거나 딥러닝 기술을 통해 장애인을 위한 코로나19 정보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의 연구들도 이어지는 중이다.

“기쁨에 젖어 있는 군중은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고 꾸준히 살아남았다가 언젠가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다시 깨우고, 사람들을 죽게 할 날이 오리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면역이 생긴 사람이 전 세계 인구의 60~70% 이상이 되면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일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하지만 풍토병이 될 가능성을 점치는 암울한 전망도 있다. 알베르 카뮈가 “(바이러스가) 방이나 지하실, 트렁크나 손수건, 낡은 서류 속에서 꾸준히 살아 있다가 언젠가 인간들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기 위해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고 경고한 이야기가 예사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성실한 연구와 확고한 연대가 사태 해결의 핵심이다. 종식되지 않은 코로나19와 잇따르는 변종에 대응하기 위해선 인내심을 갖고 성실히 연구를 이어가야 한다. 나아가 출연(연)은 국내외 관련 기관 뿐만 아니라 학계, 기업, 정부 당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코로나19 대응을 성실히 수행할 것이다. <페스트> 속 오랑 시의 시민들이 보건대를 조직해 연대에 나선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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