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프 개' 실험을 아기에게 한 과학자

조회수 2017. 10. 23. 18: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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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과학자
출처: giphy.com

먹이를 줄 때마다 종소리를 들려주자 나중엔 종소리만 듣고도 침을 흘렸다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 유명한 실험입니다. <매드 사이언스북>에 따르면 이런 기초적인 학습 원리를 '고전적 조건화'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먹이를 주면 침을 흘리는 자연적인 자극-반응에 종소리라는 새로운 자극이 결합됐습니다.

이 실험은 윤리적으로 논란이 적지 않았습니다. 살아있는 개 뺨에 구멍을 뚫거나 이상 행동을 보일 때까지 실험을 계속했습니다. 후대에 지탄을 받았습니다. 


파블로프 수준까진 아니겠지만 이런 조건 반사 실험을 인간에게 하면 어떨까 생각해보셨나요? 

출처: giphy.com

네, 이런 실험을 한 과학자가 있습니다. 존스홉킨스대학의 심리학자 존 왓슨(John Broadus Watson)입니다. 왓슨은 인간이 자극에 따라 반응하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처벌과 보상으로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조엘 레비의 책 <프로이트의 말실수>에 따르면 그는 '유아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백지와 같으며 모든 건 환경의 영향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했다고도 합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파블로프의 개 실험 비슷한 조건화 실험을 인간에게 실시한 거죠.

실험 대상은 9개월 된 아기 앨버트. 다른 아이에 비해 차분하고 얌전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실험에서 그는 9개월 된 아기 앨버트에게 '공포'를 심습니다.



우선 먹이를 주면 침을 흘리듯 본능적인 공포를 줄 수 있는 자극을 골라야 했습니다. 생후 8개월 26일 당시의 앨버트는 망치로 쇠막대를 치는 소리에 놀라 몸을 움찔하고, 입술을 오므리며 떨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시끄러운 소리에 대한 선천적인 공포 반응을 보인 거죠. 왓슨은 이 본능적인 공포를 이용해 새로운 것에 대한 공포를 만들기로 합니다.

앨버트가 11개월 4일이 되었을 때 왓슨은 흰 쥐에 대한 공포를 심는 실험을 진행합니다. 우선 흰 쥐를 바구니에서 꺼내 아기에게 보여주고 쥐가 돌아다니게 내버려두었죠. 아기는 흰 쥐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선천적인 공포가 없는 상태입니다. 오히려 손을 뻗어 만지려고도 했죠. 

그런데 이때, 아이가 쥐를 만지려는 그 순간 왓슨이 망치로 아기 머리 뒤에 있는 쇠막대를 때립니다.




쨍! 하고 큰 소리가 났습니다. 책에 따르면 "아기는 움찔하더니 앞으로 넘어져 매트리스에 얼굴을 부딪혔다. 그러나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왓슨과 그의 조교 레이너는 계속해서 실험을 진행합니다. 쥐를 만질 때마다 쇠막대를 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거죠. 두 번, 세 번, 네 번. 앨버트에게 쥐를 보여주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중간중간 체크합니다. 즉 이 흰 쥐와 쇠막대를 쳐서 생기는 소리에 대한 공포가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한겁니다.



아기는 일곱 번을 반복하고나자 쥐만 봐도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연구자는 시끄러운 소음에 대한 공포를 새로운 자극(쥐)에 연결하는 데 성공한거죠.

이 쥐에 대한 공포는 다른 동물과 사물로 이어졌습니다. 토끼와 개, 물개 코트에 이어 나중에는 수염이 달린 산타클로스 가면도 무서워했죠. 앨버트는 실험 이전에는 토끼와 개를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흰 쥐에 대한 조건 반사가 일반화 한 겁니다.

왓슨은 1920년에 이 실험을 <Conditioned Emotional Reaction>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합니다. 앨버트가 흰 쥐와 개, 토끼 같은 동물에 대한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했을거라 짐작되는 대목이 있는데요. 그는 논문에 "이 반응들을 없앨 방법이 우연히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라고 썼다고 합니다. 

이 실험은 분명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이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엘 레비의 책 <프로이트의 말실수>에 따르면 이 실험이 윤리적인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며 자신을 변론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없앨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이런 실험들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이죠.

앨버트는 어떻게 됐을까요? 미국의 심리학자 홀 벡(Hall P. Beck)은 7년 간의 조사 끝에 앨버트의 이야기를 밝혀냅니다. 앨버트는 그 아기의 본명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이름은 더글라스 메리트, 이 실험이 진행된 존스 홉킨스 병원 여직원의 아들이었죠.



출처: giphy.com

한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강요된 공포를 학습해야했던 그 아기는, 1925년에 수두증(뇌척수액이 뇌에 과잉 축적되어 뇌압이 올라가는 질환)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산타바바라 캠퍼스의 앨런 프리드런드 교수와 다른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앨버트(더글러스 메리트)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수두증을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즉 앨버트에겐 처음부터 인지장애가 있었고, 그랬기에 다른 아이들에 비해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는 거죠. 그렇다면 실험이 지니는 가치가 조금 달라집니다. 왓슨은 정말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실험적 오류를 문제 삼지 않더라도, 돌도 되지 않은 아기에게 공포를 실험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앨버트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기가 실험 대상이 된다는 것에 적극적으로 동의를 했는지도 의문입니다. 병원 직원이었기에 실험에 동의해야한다는 압박을 느꼈을 지도 모르죠. 실험이 진행되고 1개월 뒤 어머니는 앨버트를 데리고 이사를 갑니다. 

왓슨 교수는 존스홉킨스대에서 사임합니다. 이 실험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의 조교 레이너와 함께 섹스를 할 때 발생하는 육체적 반응에 대해 아주 자세하고, 깊게(?) 실험했습니다. 그는 아내 메리 아이크스와 이혼했고 교수직에서 사임해 이후 광고회사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이승아 에디터(singavhihi@scientist.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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