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평생에 이런 변신은 처음이네요.
내 평소를 너무 벗어나는 게 아닌가 했는데, 새로운 기분이네요
40년째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그는 일을 했다. 평생에 직업을 열다섯 개 정도 가졌다고 했다. 그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다 처음 정착을 한 의정부에 갔을 때 그의 주머니에는 돈 3만 원 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모아서 결혼을 하고, 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 가장이 되었다. 그는 지금도 일이 먼저라고 했다.
- 40년째 하시는 일이 힘들진 않으세요?
+ 정확히는 42년째가 됐네요. 저희가 어렸을 적에는 월급을 안 줘도 삼시 세끼만 먹을 수 있으면 된다는 시대였어요. 양계장, 폐차장, 프레스, 그러다 지금의 중장비 포클레인 기술을 배웠어요. 몸에 맞는 것 같아요. 체질에 맞다는 얘기인 것 같아요.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고요.
+ 아마, 늦둥이가 대학 졸업하려면 6, 7년 정도는 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일밖에 모르는 남편, 일밖에 모르는 아빠였어요. 내가 일을 안 하면 살 수가 없으니까. 스스로를 늘 세뇌했어요. 물론 그렇게 했으니까 우리 가족이 살았는지도 몰라요.
+ 제 아버지도 저보다 더하면 더 했던 분이세요. 평생 일만 해서 6남매를 키우셨고, 어디 가서 돈도 못써보고 돌아가신 분이에요. 밤낮없이 일만 하셨어요. 그 영향을 제가 많이 받았나 봐요. 저도 지금 이 기술을 밥만 먹고 잠만 자면서 배웠거든요.
- 가족 여행도 한 번 안 가보셨어요?
+ 둘째는 스페인 유학도 시켰어요. 그런데 애들이 물어보더라고요. 아빠는 왜 휴가에도 같이 놀러 안 가냐고. 내가 지금 일 안 하고, 안 모아두면 자식들에게 훗날 부담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나는 지금도 죽어라 살아요. 애들한테도 그냥 보여주며 살았어요. 열심히, 부지런히, 알뜰하게 살면 보고 배우겠지. 생각했어요.
- 그래도 은퇴를 하시겠죠? 나중에라도 좀 쉬셔야죠.
+ 내 고향에, 내가 예전에 태어난 집, 어머니 아버지가 사셨던 그 집을 제가 20년 전에 매입을 했어요. 그리고 3년 전부터 수리를 손수 다 했어요. 늦둥이 대학 졸업하면 저는 그리 갈라 그래요. 조상님들 산소도 거기 다 있고, 제 고향이기도 하니까. 물론 눌러 앉아 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왔다 갔다 해야죠.
+ 아 그리고 여행이 그렇게 가보고 싶어요. 다른데 아니고, 고조선 시대의 유적지들 있잖아요. 거기를 속속들이 파헤쳐 보고 싶어요. 만주, 연해주 다 가보고 싶었는데 나이가 50이 넘으니까 이제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더라고요
60이 넘은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내일을 위해 살고 있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삶. 40년을 그렇게 살아올 수 있게 한 그 원동력이, 바로 그의 가족이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