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중재인! 대법관 출신 김지형 변호사가 말하는 사회적 대화
5년여 전부터 사회적 갈등이나 쟁점이 불거지면 단골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다. 풀기 어려운 큰 걱정거리, 고민거리가 생기면 기업이든 노동계든 시민사회든, 심지어 정부조차 그를 먼저 찾는데요.
그는 사회적 약자일수록 흔쾌히 어깨를 내주며 함께 해법을 찾는 길에 앞장섭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무슨 활동을 하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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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을 지낸 김지형(61)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는 2011년 법원에서 나온 뒤 어느덧 ‘미스터 중재인’으로 사회적 공인(?)을 받았습니다. 김 변호사가 지금까지 뛰어든 곳은 사회적 관심이 뜨거웠는데요.
서울 지하철 구의역 사고 진상 규명 위윈회 위원장(2016년 6~7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직업병 분쟁 조정위원회 위원장(2014년 11월~2018년 11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위원회 위원장(2017년 7~10월),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2018년 3월~) 등을 맡았습니다.
맡는 자리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곳입니다. 4월 1일 국무총리령으로 출범한 ‘고 김용균 사망 사고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김용균 특조위)’의 위원장도 맡게 됐습니다.
그는 위원회 첫 회의에서 “24살 청년 노동자의 속절없는 죽음이 던진 질문에 우리 사회 모두가 문제의식을 갖고 함께 답을 찾아야 한다”며 “노동 안전 문제를 국가·사회적 의제로 삼아 심층적으로 논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김지형 변호사는 첨예한 갈등 현안일수록 사회적 논의라는 틀로 풀어내는 게 바람직하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데요. 그러면서 “사회적 논의란 함께 해답을 찾아가는 절차이지 미리 한쪽에서 정해둔 해답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지평 사무실에서 김지형 변호사를 만나 사회적 논의의 의미와 성과, 활성화 방안 등을 들어봤습니다.
Q.
대법관 출신이면 쉽고 편한 길이 많을 텐데 구태여 복잡한 갈등 현안들을 도맡아 조정·중재에 애쓰는 이유가 궁금하합니다.
A.
30년 가까이 법원에서 판결로 시비를 가리는 일을 하면서 누군가에게는 응어리를 남긴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법원 판결은 승자와 패자를 나눠 한쪽 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법관으로 공정한 재판을 하고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고 지는 쪽에는 후유증이 남아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는 다양한 사회적 갈등과 의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요. 지는 쪽에서도 결과를 수용하고 위안을 느낄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갈등 당자자 간 양보와 타협을 이끌어내는 조정과 중재가 바로 그런 절차라고 생각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여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Q.
중재와 조정, 사회적 논의로 갈등 현안을 해결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단점이 있지 않나요?
A.
분쟁이나 갈등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파이를 놓고 서로 다투는 상황을 예로 들면, 파이를 누가 차지할지와 파이를 어떻게 나눌지 고민하는 경우로 구분해볼 수 있겠습니다.
법원 판결처럼 파이를 누가 차지할지 결론을 내는 것은 승자독식, 양자택일의 선택입니다.
현실에는 이런 유형보다 파이를 어떻게 나눌지를 놓고 생기는 갈등이 더 많은데요.
따라서 어떻게 나눌 것인지 당사자 간 양보와 타협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조율하고 조정하는 사회적 장치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판결이라도 나쁜 화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경구가 있습니다. 사법절차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둬야 하는데요.
조정과 중재, 사회적 합의의 경험이 많이 쌓이면 시행착오를 줄여 분쟁이 장기화하는 문제는 저절로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Q.
삼성전자 직업병 분쟁 조정 활동에 대해 백서를 낼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서가 성공의 기록으로, 유사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길잡이가 될 수 있을까요?
A.
조정위원장을 맡기 시작할 때부터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백서 발간을 염두에 뒀습니다. 중재가 실패하더라도 반면교사의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07년, 고 황유미 씨가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뒤 불거진 삼성 직업병 분쟁은 타결 때까지 무려 11년이나 걸렸습니다. 조정위 활동 기간만 4년입니다.
어렵게 삼성과 피해자 쪽이 중재안을 받아들여 매듭지었지만 당사자들보다 우리 사회에 남긴 숙제가 있는데요.
무엇보다 후진적인 산업재해의 재발을 방지하고,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에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법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현행 산재 관련 법령과 법원 판례는 재해를 당한 노동자에게 업무 관련성에 대한 증명 책임을 떠넘깁니다.
입증 책임을 고용주에게 전환해야 기업들이 재해 예방 활동을 강화하도록 유도하고 분쟁도 줄일 수 있습니다.
백서는 조정 활동에 대한 단순한 기록뿐 아니라 이런 법·제도적 개선 방안까지 담아 올해 안에 낼 계획입니다.
Q.
원전 공론화위원회 활동은 문재인정부 출범 뒤 가장 눈에 띄는 사회적 논의 실험으로 평가받습니다.
찬반양론이 팽팽한 갈등 현안을 시민이 참여하는 ‘공론조사’ 방식으로 해결한 셈인데요.
그런데 공론화위원회의 결정과 권고에 따라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확정된 뒤에도 반발 여론이 여전히 만만치 않습니다.
사회적 논의라는 게 첨예하게 의견이 엇갈리거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영역을 줄여야 하는데 사회적 수용성이 낮으면 효과가 없는 것 아닌가요?
A.
Q.
김용균 특조위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 문제를 특정 사업장의 안전불감증이나 재해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했는데요. 왜 그런가요?
A.
Q.
그렇다면 특조위는 진상 규명을 넘어 재발 방지 대책 등 산업재해 전반을 다루는 사회적 논의 기구인가?
A.
그런 의지를 가지고 활동하려고 한다. 위원회에도 사업주와 노조 쪽 관계자 외에 시민사회 대표와 전문가 그룹이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특조위에서는 노동 안전 비용의 문제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지불할 것인지도 논의할 계획입니다.
우리는 선진국이라고 자랑할 만한 소득수준을 갖췄는데도 사회 전반의 안전에 필요한 비용은 소득 증가분에 비례한 만큼 지불하지 않고 있는데요.
안전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얼마만큼 지불하느냐를 살펴보면 한 사람의 생명에 대한 가치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 사회인지 판가름할 수 있습니다.
고 김용균 씨의 죽음은 단순히 한 개인의 사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그동안 누적되어온 문제, 그러면서도 우리 모두가 방관해온 문제가 고 김용균 씨가 일한 사업장에 투영돼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 만큼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고 더 이상 땜질식 처방으로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Q.
산업재해 문제 말고도 사회적 논의와 합의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수준이나 결정 방식의 변경안을 놓고 갈등이 커지고 있는데요.
A.
최저임금 문제에 관련해 여러 가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데, 먼저 최저임금의 의미에 대한 인식의 공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최저임금이 노동 계층의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수준이라면, 그런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사회적 공감을 얻는 게 선행돼야 하는데요.
이런 사회적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논의 절차를 소홀히 한 채 정책 목표만 내세워 수준을 결정하려는 경향이 있어왔습니다.
최저임금의 수준보다 최저임금 결정 방식과 과정에 대해 좀 더 숙의해야 합니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 더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 사회적 공감대도 자연스럽게 넓어질 것입니다. 주체로 참여한다는 것은 권리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논의 결과에 따른 비용과 책임 분담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합니다.
Q.
갈등 조정이나 사회적 논의 과정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인가요? 개입한다면 어느 정도,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는 게 좋은가요?
A.
Q.
사회적 논의의 핵심 주체인 경영계와 노동계도 여러 갈등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좀 더 전향적인 자세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A.
사회적 논의란 어느 한쪽의 이익에 기반한 해답을 관철하는 수단이 아닌데요. 서로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타협하면서 해답을 찾아나가는 절차가 사회적 논의입니다.
사회적 논의 절차 참여 여부를 투쟁의 수단으로 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주체적인 권한을 행사한다면 책임 의식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윈윈’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해관계가 복잡한 현실에서 서로 이기는 게임이 성립되기는 어렵습니다.
서로 지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창조적 절충점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게 더 현실적인 접근입니다.
Q.
디지털 전환 또는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갈등 요소가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산업구조와 소비 행태, 생활 방식 등의 변화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생기는 갈등인데,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으로서 이런 성격의 갈등을 어떻게 다뤄야 한다고 보나요?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