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만에 드러난 갈릴레오의 거짓말
― 1615년 2월, 로마
종교재판소에 편지 하나가 전달된다.
니콜로 로리니라는 도미니크회 수도사가 전한 이 편지는 수학자이자 과학자, 갈릴레오가 그의 친구 베네데토 카스텔리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편지 속에서 갈릴레오는 이렇게 주장했다.
과학 연구는
신학적 교리로부터 자유로워 하며
성서에 있는 천문학적 현상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갈릴레오는 이미 1610년 발표한 그의 저서 『시데레우스 눈치우스』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책은 교황청의 금서로 지정된 터였고 그의 태양중심설은 성서와 다른 천체관으로 이단으로 평가받았다.
그런 가톨릭 교회가 갈릴레오 역시 이단으로 규정하겠다고 하자 갈릴레오는 교회와의 다툼을 피하기 위해 다시는 코페르니쿠스와 그의 이론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이번에는 종교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갈릴레오는 로리니가 건넨 편지가 위조된 문서라고 결백을 주장하며 자신의 친구이자 로마의 성직자인 피에르 디니에게 또 다른 편지를 전한다. 그 편지 또한 갈릴레오가 카스텔리에게 보내는 것으로 로리니의 편지와 내용은 유사하지만 갈릴레오의 주장이 한층 누그러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종교재판으로 소환된 갈릴레오에게 반박의 여지는 없었다. 그는 결국 재판장에 섰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종신 징역형을 받았으나 고령의 나이를 감안해 가택 연금에 처해졌다.
사실 로리니가 입수한 편지에는 원본이 존재했다. 갈릴레오의 편지는 여러 개의 필사본이 있었고 그 중 하나가 로리니의 손에 들어간 것이었다. 흔히 로리니가 고발한 버전을 갈릴레오의 주장이 강경하게 드러나 있다고 해서 ‘스트롱 버전’이라고 부르고 그리고 갈릴레오가 피에르 디니를 통해 다시 제출한 버전을 ‘위크 버전’이라고 부른다. ‘스트롱 버전’에 비해 그의 주장이 한층 유연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위크 버전의 사본만 해도 10여 개가 남아있어 갈릴레오의 진의에 대해서는 의문만이 남아 있었다.
― 2018년 9월, 런던
약 400년 만에 편지의 원본이 발견되었다.
역사학자이자 사회과학자인 살바토레 리치아르도 박사가 영국학술원 도서관에서 발견한 갈릴레오 편지의 원본을 발견했다. 이 편지는 총 7장으로 편지의 끝에는 G.G.라는 갈릴레오의 서명이 남아 있었다. 새로 발견된 편지가 원본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군데군데 내용을 고쳐 쓴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원본의 내용은 로리니의 스트롱 버전에 흡사했으며 다시 고쳐 쓴 내용은 위크 버전의 순화된 표현과 같았다. 필적 감정 결과, 갈릴레오가 직접 쓴 것이 맞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원본 편지의 발견으로 '위크 버전'은 종교재판에 소환되지 않기 위한 자구책으로 갈릴레오가 수정한 것임이 드러났다.
- 성경에서 언급한 천문학적 사건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 종교 당국은 자연현상을 판단할 권능이 없다.
- 태양중심설이 성경과 양립 불가능하지는 않다.
갈릴레오가 유죄선고를 받고 재판장을 떠나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고 전해지는 것은 사실은 아니다. 실제 갈릴레오는 신앙심도 깊고 교황청의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과학 연구를 주장한
최초의 과학자이다.
그가 비록 자신의 주장을 덮으려는 시도는 했으나 유죄판결 후에도 그의 연구는 끝나지 않았다. 종교재판 이후 숨을 거두기까지 그는 가택 연금 중에도 『두 과학』을 펴내며 자신의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가 죽은 지 350년 뒤인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갈릴레오의 재판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그의 저서들을 교황청 금서 목록에서 해제했다.
* 이종필 교수의 '갈릴레오' 강연 영상에서 발췌하여 작성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