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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전 그만두고 앵무새가 된 전원책

조회수 2017. 9. 26. 18: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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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62세에 성취한 노년의 꿈
출처: JTBC

"제가 원래 기자를 꿈꿨다. TV조선 입사 조건으로 '다른 자리는 싫으니 평기자로 입사하겠다'고 했다. 평생 꿈꿔 온 직업이 몇 개 있는데, 그중에 시인과 변호사는 해봤으니 기자를 이제 하게 됐다. 죽기 전에 영화감독도 꼭 해보고 싶다. 결국 기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TV조선에 입사해 앵커를 맡게 된 셈이다." 

(CBS 노컷뉴스)


전원책 변호사가 앵커가 됐다. 


오랜 꿈을 이뤘다. 만 62세에 거둔 성취다. 열심히 산 덕분이다. JTBC <썰전>을 통해 과격한 입담을 과시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고, TV조선 <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에서 진행자 역할을 하며 가능성을 타진했다. 결국 문이 열렸다.


TV조선은 지난 7월 1일 하계 개편을 단행하면서 메인뉴스의 방송 시간을 19시 30분에서 21시로 조정했다. 그리고 주중 앵커로 전원책 변호사를 내세웠고, 전 변호사는 TV조선에 기자직으로 입사했다.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기자 경력이 전혀 없는 비전문가를 앵커로 발탁하다니.

출처: TV조선

시청률 면에서만 본다면 출발은 괜찮았다. 전원책 앵커가 처음 진행을 맡은 7월 3일(월) 방송의 시청률은 1.327%(닐슨코리아)로 1.310%였던 7월 2일(일) 방송에 비해 소폭 상승했다. 6월 30일(금)의 0.900%보다는 확연히 높은 수치였다. 지난 19일에는 1.659%까지 상승했으니 적어도 시청률 면에서는 전원책 영입이 뚜렷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7월 19일 기준

JTBC <뉴스룸> : 5.629%

MBN <뉴스8> : 2.368%

TV조선 <종합뉴스 9> : 1.659%

채널A <종합뉴스> : 1.101%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전원책 앵커의 높은 인지도가 화제성을 견인하고, 그 결과가 시청률의 상승으로 나타난 건 분명하다.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룸>을 넘기엔 역부족이지만, 적어도 채널A <종합뉴스>를 넘어서고, MBN <뉴스8>을 추격하는 모양새는 분명 고무적이다. 그러나, 시청률만으로 노년에 이룬 꿈을 축하하기엔 섣부른 감이 있다.


앵커로서 처음 시청자를 만난 날, 전원책 앵커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팩트를 전달하겠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는데 결코 소홀하지 않겠다. 어둔 길을 밝히는 등불 같은 역할을 하겠다."고 다부진 포부를 밝혔다.

마치 손석희 앵커가 JTBC로 자리를 옮긴 후 "약 70년 전 <르 몽드> 지의 창간자인 뵈브 메리는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을' 다루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저희들의 몸과 마음도 그만큼 가벼워지리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고 약속했던 것처럼 말이다.


손석희 앵커는 각계각층에서 쏟아졌던 우려와 달리 '오직 진실을 다루겠다'는 신념을 지켜냈다. 쉼 없이 몰아치는 격랑 속에서도,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심해의 공포 속에서도 굳건히 닻(anchor)을 내려 버팀목이 됐다.

하지만 전원책 앵커의 경우는 어떨까. 


고작 2주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종합뉴스9>는 휘청이고 있다. 그 흔들림의 정도가 생각보다 심해서 이대로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문제의 원인은 전원책 앵커의 편파적인 코멘트였다.

출처: TV조선


"어제 정유라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꿔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 출석했느냐는 겁니다. 특검은 본인 뜻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새벽 5시에 비밀 작전하듯 승합차에 태워 데려온 것부터 석연치 않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사회부 기자들에게 검찰과 정씨 간에 뭔가 거래가 있는 것 아니냐, 취재 좀 잘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아직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7월 13일, 전원책 앵커의 오프닝 코멘트)


"정권이 바뀌었다고 전직 대통령의 우표 발행을 취소하는 것은 너무 옹졸한 처사입니다. 저세상에서 요즘 몹시 마음이 괴로울 박정희 전 대통령님, 송구스럽다는 말씀 올립니다.“

(7월 13일, 전원책 앵커의 클로징 코멘트)


위와 같은 편파적인 앵커 코멘트에 TV조선 기자들이 반발하면서 문제가 확산됐다. 지난 15일, TV조선 기자 80명은 성명서를 발표하며 전 앵커의 코멘트가 TV조선 보도본부 전체를 모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 앵커가 결론을 정해놓고 취재 지시를 하고 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우표와 관련한 발언은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또, 전 앵커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내부 구성원과 아무런 논의도 없었던 일방적인 결정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하고 나섰다.

한편,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다. TV조선 주용중 보도본부장은 "오프닝과 클로징 모두 전원책 변호사가 아닌 내가 쓴 것"이라 해명을 했다고 한다. 주 본부장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전원책은 앵커로서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그저 적어주는 대로 읽기만 하는 '앵무새'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 의견이 내 의견과 같았을 따름이오'라고 변명을 하더라도 적잖이 실망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뉴스를 편집 ·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앵커로서의 신뢰가 깡그리 무너져 버린 상황이나 다름없다.

출처: TV조선

공정성과 신뢰성이 무너져버린 뉴스를 생산하고, 편향되고 왜곡된 언어들이 난무하는 종합편성채널. 지난 19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종편 의무재전송 4개는 너무 많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전원책 앵커로부터 불거진 논란은 TV조선의 처참한 민낯을 한층 더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감동스러워야 할 노년의 꿈이 예기치 않은 후폭풍을 낳고 있는 셈이다. 부정확한 발음과 부족한 전달력보다 더욱 아쉬운 건 앵커로서의 자질과 역할에 대한 몰이해다.

"외람되게도 수많은 선배 언론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하게 됐다"던 전 앵커에게 묻고 싶다. 


앵무새가 되기 위해 평생의 꿈인 기자가 되고 앵커 자리에 앉은 것인가? 아니다 싶으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와야 하는 것 아닐까? 적어도 그 정도의 자존심은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과거 자유선진당에 합류한 후 대변인 역할을 맡았지만, 당의 방침과 자신의 신념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퇴하고 탈당 했을 만큼 당당했던 전원책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러기엔 노년에 이룬 꿈이 너무도 달콤한 걸까? 


전원책의 꿈과 도전, 그 자체에 대한 응원과는 별개로 준비되지 않은 도전이 가져온 씁쓸함은 뒷맛이 쓰다.

* 이 글은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원문: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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