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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사람이 되지 않는 방법

조회수 2021. 2. 24. 09: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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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던지면 개는 돌을 쫓아가지만 사자는 돌 던진 사람을 덮친다."

삶은 끝없는 프레임 걸기 전쟁이다. '프레임'은 '생각의 틀'이라고 보면 된다. 서로 자신의 프레임으로 얼마나 상대방을 잡아 가둘 수 있는가 혹은 내가 상대방의 프레임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의 다툼이다.


프레임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존재할 수 있다. 나 자신에 대한 자아상에서부터 나의 환경, 나의 가치와 능력과 존재성, 나의 가치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관점, 관계와 삶에 대한 관점, 여러 도덕, 윤리, 종교, 철학관 등등 모두 해당된다. 한 마디로 프레임은 '모든 영역에 대한 특정 관점'이다.


이론적으로 프레임 전쟁에서 이기는 법은 간단하다. 상대방이 아무리 나에게 자기의 프레임을 걸려고 시도해도 내가 말려들지 않으면 된다. 거기에 갇히지 않으면 된다. 문제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은 누가 어떤 프레임을 걸어와도 자유로울 것 같은데 실제 사람과 상황들을 대할 때는 여지 없이 휘말리고 만다는 점이다. 마치 무슨 주문에 걸리는 것처럼.


왜 그럴까? 다음의 사실을 간과해서 그렇다.


프레임은 '절대적인 사실'이 아니다. 단지 '생각의 틀'일 뿐이다. 타인과 사회가 제시하는 프레임들은 단지 '그들의 틀'일 뿐이다. 그것은 절대적 진리도 혹은 유일한 진실도 아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좀 더 사실에 가깝고 좀 더 실용적이며 의미가 있는 프레임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외부에서 제시되는 프레임이라고 해서 모두 틀리거나 엉터리는 아니다. 만약 어떤 프레임이 나의 것보다 객관적으로 혹은 효용성 측면에서 더 정확하고 유리하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편이 유리하다.


문제는 그렇지 않을 때다. 즉 타인이나 사회가 나에게 제시하거나 주장하거나 강요하는 프레임이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또 정확하지도 않고 심지어 틀린 경우다. 그럼에도 나도 모르게 스스로 해당 프레임에 갇혀 버리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프레임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지 마라


타인이 제시하는 프레임을 굳이 받아들일 필요가 없거나 오히려 그 프레임이 나에게 해를 끼침에도 나도 모르게 거기에 갇히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가 먼저 던진 프레임 속으로 내가 스스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여기엔 아주 교묘한 프로세스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 인간의 '대화의 습관' 중 하나이다. 즉, 우리는 대화를 할 때 거의 자동으로 서로 상대방이 말한 '내용'을 사실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렇게 하면 대화는 원활하게 진행된다.

진화론적으로 훌륭한 전략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우리 스스로 만든 설정'이다. 대화와 소통의 편의성을 위해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유용한 대화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프레임이라는 점을 잊어버린다. '상대가 말한 것은 본래 중요하다, 전부이다, 절대적이다, 사실이다'라고 여기기 시작한다.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반응이다.


문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 때 조차도 무심결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내가 굳이 '상대가 먼저 던진 프레임'을 계속 중요하게 인식하며 그것이 전부이고 절대라고 여길 때 문제가 시작된다. 그 프레임을 중심으로 생각과 대화를 진행할 필요가 없을 때조차도 우리는 곧잘 그렇게 한다. 그렇게 습관이 잡혔기 때문이고 그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패턴을 기계적으로만 따르게 되면 어느 순간 상대가 제시한 프레임이 불필요할 때에도 스스로 걸려들게 된다. 상대의 프레임이 강력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그렇게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눈치채는 게 가장 중요하다.


사실 이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진화적 편법'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내가 굳이 수고롭게 고유한 프레임을 만들어 내지 않고 상대가 제시한 괜찮은 프레임을 편안하게 그냥 이용하려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효율성이다. 어쩌면 상당 부분에서 유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있게 마련이며, 만약 이런 경우에도 편안함을 위해 무작정 그 프레임을 받아들인다면 결국 부작용이 발생한다.


어떻게 보면 제시된 프레임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순수한 선택의 문제다. 앞서 말했듯이 많은 경우 이 기제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그래서 이것을 의식화해야 한다. 의식화하면 어떤 선택이 좀 더 지혜롭고 유용한 것인지 능동적으로 판별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대화를 하거나 혹은 대화가 아니더라도 타인이나 외부의 프레임을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에는 항상 다음의 두 가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1. 나에게 필요하다면 상대의 프레임을 중심으로 대화를 한다. 


그에 맞추어 생각과 반응과 행동을 해 준다.


2. 나에게 불필요하다면 굳이 상대의 프레임 안에서 반응하지 않는다.


무심하거나 혹은 다른 프레임을 제시한다.


이 두 가지만 잘 챙겨도 일상에서 상대방의 말이나 의도에 나도 모르게 휘말려 들지 않을 수 있다. 타인들에게 만만하고 쉬운 사람으로 보이던 모습을 상당 부분 없앨 수 있게 된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1번처럼 상대가 말한 내용과 상대의 프레임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중심으로 생각과 말을 진행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행동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서로 의사소통을 나누며 발전시켜온 진화의 결과물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주 잘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요즘과 같이 공감이 중요한 시대에는 더더욱 그런 능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또 그렇게 해야 상대방과 주위를 더욱 잘 파악하게 되고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좀 더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과거에는 1번만 했다면, 이제부터는 2번처럼 만약 불필요하다면 제시된 프레임에 그냥 무심하거나 혹은 오히려 내가 다른 프레임을 제시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자존심 싸움이나 기싸움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하면 나와 상대방 모두를 위해서 좀 더 효율적이고 효용성 있게 상황을 만드느냐를 말한다.


나에게 제시된 프레임이라고 해서 모두 맞고 모두 적절하지 않다. 정확성, 타당성, 합리성, 적절성 등을 엄밀히 따져 보아야 한다. 아무리 상대가 말한 내용을 중요시하고 그것에 주목하도록 진화되었다 해도 상황에 따라 그 적용을 달리해야 한다.


조금만 신경 쓰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챙길 수 있다. 물론 쉽게 쉽게 바로 되진 않는다. 여기서 이론으로 볼 때는 잘 할 것 같은데 또 실제 대화를 할 때는 이게 실시간으로 잘 적용하기 힘들다. 과거의 패턴이 강하면, 이걸 뻔히 알면서도 여전히 대화 중에 상대방의 프레임에 걸려들어 버리는 자신을 계속 볼 것이다.


하지만 초반에 그렇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계속 시도를 하면 된다. 계속 이 두 가지, 즉 프레임의 활용과 프레임의 거부를 동시에 유념하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내가 두 가지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다. 대화 중이든 혹은 그 어떤 상황이든 계속 말이다. 그러면 점점 의식에 각인되고 실제 대화에서도 적용할 수 있게 된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실시간으로 이 두 가지가 선명히 구분되기 시작한다.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내가 상대방들의 프레임에 정신없이 휘말려 들지 않고 차분하게 '과연 이 프레임이 받아들일만한 것인지 아닌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게 보이는 만큼 이제 능동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의 혹은 외부의 프레임에 속절없이 빠져들지 않고 차분하게 그 정확성과 효용성을 살펴보면서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건 자신에게 좋으며 아주 기분 좋은 체험이 될 것이다.


프레임이 아니라 사람을 덮쳐라


상대방의 프레임 걸기에서 자유로울 혹은 만만한 사람이 되지 않을 또 하나의 방법은 해당 프레임의 내용이 아니라 그 '말한 사람 자체'를 덮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유명한 비유는 다음과 같다.


"돌을 던지면, 개는 돌을 쫓아가지만 사자는 돌 던진 사람을 덮친다."


예를 들어 누가 당신의 외모나 몸에 대해서 부정적인 프레임을 던졌다고 해보자. 못생겼다느니 뚱뚱하다느니 하며 말이다. 혹은 능력면에서 무능력하다는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보통 우리는 그만 그 던져진 '돌'을 자동으로 쫓아가기 시작한다. 우리의 느낌과 생각과 반응은 프레임 즉 그 말의 내용에 즉각 휘말려 들어가 버린다.


그래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상대방이 말한 나의 못생김만 혹은 나의 무능력만 의식하면서, 그 부정적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 게 첫 번째 반응이다. 두 번째 반응은 그 말에 반박하거나 저항하면서 화를 내는 것이다. 실제 겉으로 나와서 말로 상대방에게 표현을 할 수도 있고 혹은 그냥 속으로 삭힐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미 나는 개처럼 열심히 그 돌만 쫓아가고 있는 것이다. 즉 그 프레임의 감옥 속에 스스로 들어가는 것이다. 어쩌면 돌 던진 사람은 그 모습을 보며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던져진 돌'을 쫓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해당 프레임과 관련하여 너무 나 자신에게 얽메이기 때문이다. 주의와 관심을 너무 나 자신에게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꼼짝을 못하는 것이다. 자기에게 관심을 갖지 말라거나 자신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라는 게 아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스스로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고 스스로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문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 때에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필요할 때만 그렇게 하면 된다. 혹은 그건 그냥 기본으로 항상 당연하게 깔고 있으면 된다.


그러면서 굳이 필요 없을 때는 오히려 자신에 대해서 '심드렁'한 태도를 유지하는 쪽이 더 효과적이다. 그러면 상대방이 자신과 관련하여 어떤 프레임을 던져도 그 프레임에 대해서 무심해진다. 그 중심에 불필요한 '나'가 없기 때문이다. 프레임에 걸려들 내가 없기 때문이다. 쉽게 하긴 힘들지만 제대로 하면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사자처럼 '돌 던진 사람'을 덮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그 말의 내용과 프레임에서 관심을 거두고 그 '말을 한 당사자'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의식의 초점을 맞추는 방법이다. 이것은 주로 질문이나 궁금함으로 진행된다.


"이 사람은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지?"


"무슨 속사정이 있는 걸까?"


"이런 말을 함부로 하는 걸 보니 인성이 덜되었나 보다."


"자기 자신의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는 건 아닐까?"


그 말을 한 이유에 의문을 던져 '그 사람 자체'로 주의의 초점 혹은 대화의 초점을 돌리는 것이 중요하다. 궁금해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한 말(프레임)이 아니라 그 프레임을 만들고 있는 그 사람 자체를 덮치는 것이다. 사자처럼 '어흥~!'하고 말이다. 그러면 그는 깜짝 놀라게 된다. ‘돌을 쫓아갈 줄 알았는데 갑자기 나를 덮치다니’하면서 말이다.


속으로만 궁금해하지 않고 말로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즉, 나에게 대해서 뭔가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부정적 말과 내용에 갇히거나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정색을 하고 도로 그 사람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근데요, 아무개씨! 아무개씨는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본인이 누구에게 못생겼다는(혹은 무능력하다는) 말을 들었었나요?"


"저는 아무개씨가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사람은 아니라 생각하는데, 실망이네요. 제 판단이 틀렸나 봐요."


"혹시 외모지상주의자이세요?"


"누가 본인에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한다면 아무개씨는 어떤 기분일까요?"


이렇게 '프레임이 아닌 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기'를 하면 몇 가지 이점이 생긴다. 첫째, 더 이상 그 불필요한 프레임을 중심으로 나의 생각이 휘말리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그 불필요한 게임에 말려들지 않는다. 둘째, 불필요한 프레임을 만든 사람에게는 일종의 경고가 된다. 그리고 내가 오히려 역프레임을 걸 수 있다. 그래서 그 프레임이 계속 작동되지 않고 멈추게 만든다.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언급이나 역질문'은 상대방의 프레임에 걸리지 않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상대방의 프레임을 그대로 되돌려 줘라


타인의 프레임 걸기에서 자유로울 세 번째 방법은 '되돌려 주기'이다.


상대가 프레임을 씌우려 할 때(특히 부정적 프레임), 그 프레임 안에서 굳이 답하려 하지 마라. 질문을 받았다고 혹은 그런 프레임이 씌워졌다고 그 안에서만 생각하고 답을 할 의무는 아무에게도 없다.


반대로 상대방에게 그 프레임을 되돌려 주면 된다. 도로 덮어 씌워 버리는 것이다. 때로는 이게 가장 적절한 대응이다. 이 역시 불필요하게 나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히려 초점을 상대에게 되돌리는 기법이다. 비교적 간단한 예들을 들면,


"너는 왜 그렇게 못생겼냐?" ==> "네가 못 생겼는데?"


"너 이것도 못하냐?" ==> "너는 잘 할 수 있냐? 아닌 것 같은데..."


"너 왜 그러냐?" ==> "너는 왜 그러냐?"


"너 왜 그런 생각을 하냐?" ==> "너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너 사람이 너무 부정적이다. ==> "네가 부정적인데?"


위 글을 보면서 눈치 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여기서의 모든 내용은 철저하게 '건강한 방어'로서의 기법들이다. 우리는 굳이 타인들에게 나의 프레임을 불필요하게 걸려고 시도하거나 그것으로 공격할 필요가 없다.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말이다. 또 사실 많은 이들은 굳이 먼저 타인들을 공격하거나 억지로 내 주장을 주입하려 하지 않는다.


문제는 불필요하게 타인들에게 먼저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생긴다. 그럴 때는 이 글에서 말한 관점과 기법들을 사용해서 적절히 대응해 주면 된다. 먼저 공격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도 않는 것이다. 불필요하게 '만만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의 이 글의 목적이다.




자신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줄도 알아야 한다


물론 궁극적으론 나도 그 사람도 자신의 잘못된 프레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게 정답이다. '프레임에 자동으로 갇히는 정신적 패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우리가 추구하고 성취할 만한 것이다. 나든 타인이든 우리 자신이 만든 프레임에 서로 갇히지 않고 오히려 어떤 프레임이든 주인으로서 능동적으로 사용하기.


나의 프레임들도 경우에 따라선 단지 내가 가진 하나의 틀일 뿐이라고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은 정말 중요하다. 이것을 알아채야 한다. 필요하면 요긴하게 쓰지만 그렇지 않으면 유연하게 넘겨버릴 수 있는 게 나에게도 좋다. 나의 프레임이든 타인의 프레임이든 어떤 프레임도 절대적 사실, 유일한 진리, 어쩔 수 없는 무엇 등이 결코 아니다. 어쩌면 이 글에선 이게 가장 중요하다.


상대의 프레임을 거부하고 내 프레임은 절대적으로 여기면, 여전히 '프레임이 절대 사실이다'는 설정에 빠지게 된다. '나의 프레임'이라고 해서 다르게 여기지만 결국 그것도 프레임이다. 오른 손에 묻은 물감을 지우려고 다른 물감이 묻은 왼손으로 문지르면 결국 손의 물감은 지워지지 않는다. 양 손의 물감 모두를 지워야 한다. 프레임은 그런 물감인 셈이다.


나와 타인의 프레임 모두에 대해, 우선은 내가 먼저 자유롭고 그리고 타인들도 자유롭게 해주기.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목적이 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글에서 말한 역질문과 역프레임 씌우기 등은 그 목적의 달성을 위해 사용될 때 진짜 의미가 있다. 나든 상대방이든 프레임에 갇히거나 가두는 게 목적이 아님을 항상 명심하며 불필요한 프레임으로부터의 자유를 함께 누리자.


by 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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